핑크 플로이드 더 월 영화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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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핑크 플로이드 - 더 월 영화 감상문
우리는 흔히 ‘벽’을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의 뜻으로 비유하여 사용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는 벽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보는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는 영화의 줄거리였다. 전쟁, 교육, 아내, 어머니, 무기력함, 파시즘까지 영화의 이야기선상에는 수많은 주제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이 이야기의 주요한 맥락을 이룰 정도로 비중이 크지 않고 비슷비슷하다. 이 모든 것은 벽을 이루는 하나의 벽돌이 만들어지기 위해 거치는 각각의 과정들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거대한 벽,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벽돌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겨냥한 비유이다. 어찌 보면, 매우 거대한 주제이기에 추상적인 면들이 많아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 안의 여러 가지 작은 주제들은 모두 벽이라는 틀 안에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한 영역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통제한다. 그 테두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 그 벽은 한 명, 한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어느 한 부분도 다르지 않고 같다. “그저 벽돌들 중 하나일 뿐이야.”라고 자신의 존재의 정의를 내리는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그저 수많은 벽돌 중 하나로써 취급받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어릴 적 전쟁으로 죽은 아버지, 그 역시 평범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허나 그 평범한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하나의 훈장 따위로 절대 위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생명의 무가치함을 느낀다. 그 벽안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각각의 인간이 지닌 생명의 무가치함이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나간 생명을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충고하듯이 말한다. 나무 한 그루보다는 숲 전체를 봐야 한다고. 이 말은 글을 쓸 때에 글의 전체적인 구조를 균형 있게 잡거나, 어떠한 사회의 현상들을 이해할 때 흔히 인용한다.
이 말이 우리의 교육에서도 인간의 삶과 생명을 놓고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물론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있어 한 사람의 삶과 생명은 수천 수백만의 사람의 삶, 생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명이 죽는 것이나 수천 수백만이 죽는 것이나 똑같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의 책임에 대한 말이다. 단 한사람의 생명도 우리는 돈 혹은 그 무엇을 지불하더라도 다시 살 수 없다. 그 지나간 삶을 되돌릴 수 없다. 삶이 지나간 순간, 생명이 끝나는 순간 이미 우리 권한 밖의 일이 된다. 경제적인 숫자놀음 따위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숲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가 무엇이 다르고 어떤 특성을 가졌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늘 유념해야 한다. 그 한그루가 나 자신이고, 또 다른 한 그루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아이가 받는 교육은 교육이기 보다는 통제라는 말이 적합하다. 교육의 부적절한 방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교육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몰개성화를 비난한다. 틀에 박힌 형식적인 교육으로 일관하면서 말이다. 모두 같은 표정, 자세, 행동을 하는 학생들은 단일품종 대량생산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공장에서 공정을 따라 똑같이 이동하는 공산품으로 비유된다. 그들은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책상을 뒤엎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그들의 욕구는 고등학생 시절 내가 느낀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일탈이기 보다는 자기 자신 그대로를 감추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하지만, 결국 현실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을 때 그것은 하나의 벽이 되어 학생들을 하나의 벽돌로 흡수해 버린다.
아이는 성장하여 어른이 되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하고 무감각함에 지쳐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절망적인 모습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는 음악가가 되었다. 예술가는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어린시절의 통제받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했음에도 그가 무기력과 무감각함에 젖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 사람을 이처럼 망가트린 것일까?
나이가 들어서 자유를 찾아 예술을 하였지만, 삶의 무의미함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아니, 어린시절 받은 수많은 가르침과 통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전히 그의 생각은 어린시절 교육과 전쟁으로 인한 삶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머니 역시 그의 적절한 인도자가 되지 못했다. 그가 의지했던 어머니 조차도 선생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그저 하나의 전혀 다르지 않은 벽돌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그는 완벽한 하나의 벽돌이 되고자 한다. 남과 다르고자 투쟁했던, 음악가로의 삶에서도 결코 부술 수 없는, 자신을 가로막은 벽을 느꼈던 것일까? 이젠 그 벽을 허물 수 없는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의 벽돌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눈썹을 밀고, 머리를 모두 깎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을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같은 옷, 같은 머리, 같은 피부, 같은 생각,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