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사저포기의 인간과 귀신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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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만복사저포기의 인간과 귀신의 사랑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만복사저포기의 인간과 귀신의 사랑-
1. 금오신화 란?
금오신화(金鰲新話) 는 조선 전기의 천재 문인이자, 사상가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창작한 단편소설집이다. 모두 5편이 현재 전하는데 인간과 귀신의 만남 남염부주(저승세계)와 용궁으로의 여행을 소재로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룬 전기소설들이다. 본래 ‘금오’는 중국인의 신화적 상상체계에서 동해의 봉래산을 떠받치는 존재였는데, 우리나라가 중국의 동방에 있으므로 우라나라 전체를 금오 와 연관시키기도 하였다. 실제로 금오 라는 산은 전라도 광주나 나주(능주)에도 있다. 하지만 김시습은 여러 시에서 경주 남산 일대를 ‘금오’ 라고 표현하였다. . ‘신화’는 새로운 이야기란 뜻이다. 한문고전에서 ‘신(新)’은 혁신을 뜻하며, 기존의 가치를 해체하고 권혁화된 사상체계에 저항하는 의지를 반영한다.
금오신화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우리나라 사람을 등장인물로 하였으며, 시대적 배경이 현실적이다. ‘만복사저포기’는 고려 말 왜적의 침략을 배경으로 하였고, ‘이생규장전’은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배경으로 삼았다. ‘취유부벽정기’ 는 옛 도읍 평양을 무대로 삼았으며, ‘남염부주지’ 는 조선 초에 유행한 지옥 신앙을 소재로 삼았다. 또한 금오신화는 귀신. 염왕. 용왕. 염부주, 용궁 같은 비현실적 소재를 사용하였다. 허구화된 이야기 속에는 당시의 지식인 및 민중들이 지녔던 심리적 고통과 사상적 고뇌가 투영되어 있다. 이를테면 ‘만복사저포기’ 소설은 양씨 가문의 설화를 토대로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만복사저포기’에 등장하는 귀족집안의 출신인 5명의 처녀들의 시는 매우 기교가 높은 시들이다. 문맥상으로는 이승에서 짝을 만나지 못하여 명혼이 되어 떠도는 외로운 심정을 노래한 시 이지만, 그 시대상의 귀족집안의 아가씨들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출신과 재능에 부합하지 못하는 짝을 찾지 못한 고독,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염원하지만 끝끝내 찾지 못하고 집안의 정해진 약속대로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귀족 아가씨들의 안타까움이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연부주지’에서 박생이 염마왕으로 취임하는 것은 민간의 전승을 계승한 것이다. 김시습은 그러한 민간 전승을 이용하여, 현실계의 부조리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또 ‘용궁부연록’에 등장하는 신들이 매우 생동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것도, 김시습이 당시 민중의 수신(水神) 사상을 참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문어체 문장이나 시는 대상을 서정적으로 미화하고 등장인물의 심리. 사건 전개의 암시,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작가의 심정적 평가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남연부주지’는 예외이지만, 다른 네 작품은 모두 시(절구. 율시. 배율. 고시. 잡언장편고시 )나 사(詞). 초사체. 악장을 이용하여 정경과 사건의 흐름을 묘사. 서술. 암시 하였으며, 극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여러 여인들의 심리를 각기 다른 시풍 속에 담아낸 것은 문학적 수사의 극치를 이루었다. 또한 ‘용궁부연록’에서는 곽개사. 현선생의 자기소개 내용을 유머러스한 가전체의 방백으로 처리하여 가전체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연극적 효과를 낳았다.
2. 금오신화 의 창작배경
조선왕조의 건설자들은 지배질서를 확립하고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집권층의 생활기반을 확립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소외된 일부의 지식인들은 민중의 처지에 동조하면서 새 왕조의 이념적 모순과 사회적 폐단을 비판하고 새로운 사상을 모색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시습이었다. 김시습은 인간 개개인의 본래성이 당시의 현실 속에서 구현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그 자각에서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소설로 담아냈다.
3. 김시습은 어떤 인물인가
자는 열경(悅卿이)고, 호는 매월당(梅月堂) 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을 만큼 재능이 뛰어나서, 세종이 그를 불러 시험해본 뒤 나중에 크게 쓰겠다고 했다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5세 무렵, 성균관에서 대학자들에게 배움을 받을 당시 어머니를 여의었고, 그를 돌봐주던 외숙모마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중병이 들어 계모를 맞이했다. 이 무렵에 김시습은 삶의 허무와 무상을 깨닫고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결혼을 하고 삼각산에서 공부하던 중 세조의 ‘왕위 찬탈’(1455)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며 유학 경전을 불살랐다. 그리고 미친 사람을 자처하며 방랑 길에 올라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녔는데, 이때 머리를 깎고 ‘설잠雪岑’ 이란 법명으로 중 행세를 했다. 31세(1465)에 금오산에 은거하여 37세까지 머물렀다. 이곳에서 ‘금오신화’를 지었다. 1481년에 환속하여 안씨를 아내로 맞아들이지만, 이듬해 아내가 죽어 자식도 없는 고단한 신세가 되었다. 1483년 다시 방랑의 길을 나서 떠돌다가 1593년 부여의 무량사 에서 죽었다.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세상과 불화하여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떠돌다 죽은 그를 두고 ‘방외인’이라 부른다.
4. 김시습이 이승과 저승을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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