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당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비롯한 많은 서화를 그렸으며, 제주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겼다.
추사유배지는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에 남긴 유배 문학의 커다란 문화적 가치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금석학과 유학, 서학의 의미는 역사적·학술적으로 크게 평가되고
김정희(1786∼1856)
조선시대 말기의 문신, 실학자, 서화가였다. 추사 완당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호가 매우 많으며 서체도 여러 가지이다. 충남 예산의 권세 높은 집에서 태어나 1819년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예조 참의, 설서, 검교, 대교, 시강원 보덕 등 주로 학문을 연구하는 벼슬을
것을 말한다.
대체로 18세기 이후 실학의 흐름은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와 박지원·박제가·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및 완당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룩하게 된 실사구시학파로 대별된다. 그러나 이 세 유파가 제각기 학문분야를 달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념과 방법에 있어
완당을 비롯하여 예당, 보담재, 담연재, 승연, 현란, 과파, 노과, 승련노인 등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때와 장소에 따라 별호를 다르게 사용해서 그 수가 200여개나 되었다. 천재 신동으로 알려진 추사의 출생에 관하여는 그 전설이 신기롭다. 그가 태어난 지금의 추사고택의 뒷산은 가야산 연봉의 남단
완당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룩했으며, 경서 및 금석․전고의 고증을 위주로 하는 유파
이우성은 실학사상이 시대조류를 이루게 된 18세기 이후의 서울 및 근기 지방 출신의 실학파 학자들을 연구대상으로 한정한다. 실학파의 학자들은 대체로 양반 신분의 소유자이면서 이조 관료국가의 권력
김정희(1786~1856)의 자는 원춘이며, 완당ㆍ추사ㆍ예당ㆍ시암ㆍ과파ㆍ노과 등 백여 개의 호를 가지고 있다. 경주 김씨 집안에서 정조 10년인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뒤에 큰아버지 노영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증조부인 김한신이 영조의 사
김정희(1786~1856)의 자는 원춘이며, 완당ㆍ추사ㆍ예당ㆍ시암ㆍ과파ㆍ노과 등 백여 개의 호를 가지고 있다. 경주 김씨 집안에서 정조 10년인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김노경과 어머니 기계 유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뒤에 큰아버지 노영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증조부인 김한신이 영조의 사
완당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룩하게 된 실사구시학파로 대별된다. 그러나 이 세 유파가 제각기 학문분야를 달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념과 방법에 있어서는 모두 당시의 관념적인 주자학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을 지향하여 실용과 실증을 창도했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었다. 그중
1.추사 김정희 ( 秋史 金正喜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 1786~1856 정조 10∼철종 7) 조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선석학자. 본관 경주. 자 원춘(元春). 호 완당(阮堂)·추사(秋史)· 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세한도
국보 제 180호
크기: 가로 109cm 세로 23cm(그림부분 69cm)
제작시기: 1844년
완당 김정희의 작품
두 장의 종이를 이어 만든 작품, 문인화
문인화
세한도
세한(歲寒)이란?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안다 -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