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이고 난해한 회화, 사회 문제와는 유리되어 자신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예술 개념을 상정한 것이고, 이는 예술의 영역에서 대다수의 대중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대다수의 대중은 그린버그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예술 작품을 보고 난해하다고만 느낄 뿐 어떤 감흥을 느끼기가 쉽지 않을 것
세밀한 묘사, 마술적 리얼리즘 등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였던 극단적인 사실주의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연주의가 아니라 극도의 사실표현을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서, 사실주의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허구는 새로운 현실 일 수 있다.
표현한 ‘즉흥’, 장기간 작업을 통해 서서히 형성된 현학적 면모를 지니는 내재된 느낌의 표현인 ‘구성’의 조형방법에 의해 독자적인 화풍을 전개했다. 그는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을 보고 추상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1895년 그 작품을 보면서 잘 이해하지 못하여 당황스럽고 괴로워하면
작품보다는 ‘생각’이 더 중요.
ex) 존 발데사리의 전시
· 미술작품은 일상적 물건과 달라야 한다는 당위성 ‘삭제’
ex) 올덴버그의 햄버거와 감자튀김, 워홀의 브릴로 박스
· 현대 미술의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
: “미술에 종말이 오자 당신은 추상화가, 정물화가, 누드화가가 될 수 있
프랑스의 사상가.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했으며 서양문명의 핵심인 합리적 이성에 대한 독단적 논리성을 비판하고 소외된 비이성적 사고, 즉 광기(狂氣)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적 관계를 파해침.
- 포스트모더니스트 비평과 게이 미술가들 그리고 게이미술의 비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침.
표현의 확장과 타블로 (Tableau)형식의 파기를 가져오며, 이후에 나타나는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누보레알리즘 등에 영향을 끼쳤으며, 오브제의 미학인 아쌍블라주, 정크아트, 개념미술, 팝아트,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까지도 새로운 미학적 개념들과 형식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국형 회화” (1955), p. 106.
“그는 1944년 초기에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위해 제작한 벽화에서 진정한 평면성에 몰입하였다. 더욱이 1946년 말에 그가 에나멜 물감의 얽혀진 타래 형상의 선과 얼룩들로 꾸준히 작업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가 얻었던 첫번째 결과는 소벨이나 토비에게서 보여졌던 어
미술’의 문맥 안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미술가들의 활동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그림 리처드 해밀턴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있게 만드는가?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icult, so appealing?>,콜라주, 26-25cm
최초의 팝아트 작품은 리차드 해밀턴의 <오늘날의 가
주의 그룹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기간 중, 그의 아내와 반 되스부르그와 함꼐 스트라스부르그에 신조형주의풍의 건축 장식 오베트를 제작한다. 1926년에 파리 근교의 뫼동에 정착한 아르프는 1930년 처음으로 종이를 찢어만든 작품을 발표한다. 이때까지 우연성에 입각하여 놀라운 효과를 창출해내는 창
(1937) 등에서 볼 수 있듯이 1940년경까지 독자적으로 성숙했는데, 서로 고립
한 현실적 물체와 논리를 뒤집음으로써 재미있게 서로 결합시키고, 명쾌하게 묘사하여 매혹적인 환상의 세
계를 그렸다. 이러한 평이하고 깔끔한 작품들은 밤의 신비나 괴기를 즐기는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주목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