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2차 전투 - 중국군의 신중한 공격
10월 25일~11월 4일 중국군과 한국군의 본격적인 1차 전투
중국군은 한국군을 덕천·개천·안주 까지 밀어내는데 성공
11월 8일 미군의 반격. 패전
- 중국군은 미군을 유인해 동서에서 공격하는 전략으로 자만해 있던 미국군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
인천 상륙 작전과 점령정책(한미 유엔군의 북진 공격)
1. 한국전쟁와 미국
- 한국 전쟁 발발과 관련된 미국의 기본전략의 전개를 살펴보면 우선, NSC 48(1949.12)로 이는 중국에서의 공산정권의 승리에 대해 미국의 전략목표를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힘을 봉쇄하고 가능한 한 감퇴시킨다는 목표였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
1. 한국전쟁과 미국
미국의 한국전쟁에 관련된 기본전략을 살펴보면 중국에서의 공산정권의 승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힘을 봉쇄하고 가능한 한 감퇴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치슨 국무장관은 한국과 타이완
제 5장 - 중미전쟁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에 관해서는 주롄룽의 저서 「마오쩌뚱의 한국전쟁」이 잘 말해주고 있다. 당시 중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타이완 침공작전을 중지하기로 결정한다. 바다 넘어 타이완으로 진공하기 위해서는 공군과 해군이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조선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 측은 불안한 눈으로 사태를 보고 있었다. 인천 상륙 작전 전 중국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타이완 침공 작전에 관한 부분이었으며,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공군력과 해군력이 필요했으나 당시 중국은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한국전쟁 당시 중국은 타이완 공격 시기를 연기하고 있었다. 바다를 넘어 타이완으로 가기 위해서는 공군과 해군이 있어야 하나 중국에는 아직 이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미국의 개입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조선인민군이 파죽
1.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1949년 당시 미국이 남긴 최종 문서는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힘을 봉쇄하고 가능한 곳에서는 감퇴시킨다’는 미국의 전략목표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와중에 나온 애치슨라인, 즉 소위 말하는 불퇴방어선에 대한 북한 측의 해석이 어떠했느냐를 두고 논란이 남는다. 북한
1. 한국 전쟁의 개시와 미국
미국은 중국의 혁명 성공이라는 사태에 대하여 NSC 48을 책정한다. 이는 봉쇄와 반격의 결합의 결과이다. 1950년에는 NSC 68이라는 문서가 정식화 된다. 대통령의 서명은 없지만 당시 미국의 적극화된 전략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NSC 68과 NSC 48사이에 미 국무장관 애치슨의 내셔
제 10강. 중미전쟁 (5장)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조선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 측은 불안한 눈으로 사태를 보고 있었다. 미군의 반격이 있을 때 중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점을 둘러싸고 여러 차원에서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마오쩌뚱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는 한국전쟁의 발발 후부터 북한을 직접적으로 원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마오쩌뚱은 한국전쟁의 참전에 대해 강력하게 참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고 미국의 중국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