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식민지시대(일제강점기, 일제시대)와 농업기술보급
한국에 있어 근대적 농사시험 연구와 지도는 1882년에 한미조약 이후 일본과 미국을 다녀온 외교사절단을 통하여 처음 소개.시도되었다. 그러다가 1906년에 이르러 일제의 조선통감부는 이 땅에 권업모범장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본격적인 제도
Ⅰ.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임야소유권
식민지기 임야소유권의 정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는 권영욱(1965)을 필두로 신용하(1982), 강영심(1983·1984), 심희기 1991a; 배재수 외(2001) 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밖에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지만 검토할만한 논저 또한 적지 않다
Ⅰ. 일제시기(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의 친일파
1. 3.1 운동 무렵의 친일파
-친일파에게 귀족 신분을 배급
1910년 6월부터 나남, 청진, 함흥, 대구의 일본군들이 한밤중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길을 통해서 서울로 진입해 왔다. 이들 응원 병력과 용산 주둔 일본군 제2사단의 철통같은 경비망 속에서 8
일제강점기, 일제시기, 일제시대)의 성격규정
첫째, 근대화 및 자본주의화와 공업화의 시기
둘째, 봉건사회에서 산업자본주의시대로 가는 과도기로서의 상업자본주의의 시기
셋째, 식민지 半봉건사회
1. 근대화 및 자본주의화와 공업화의 시기
일본의 식민지통치가 한국에서 경제성장, 교통,
일제로서는 한국 독립운동자들을 단속하는 데에 상당한 곤란을 느끼고 있었다. 이 점은 일제의 임시정부 대책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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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일제시대행정(일제강점기행정)과 지방제도개혁
일본은 지방행정의 각종의 후진성과 폐습을 개혁한다는 구실 하에
인천의 발자취
물은 생명의 기원이자 인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물로 둘러싸인 성'을 뜻하는 '미추홀'이란 옛 이름을 간직한 인천에서 우리 역사의 수많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인천은 백제를 세운 비류(沸流)가 고구려로부터
<시장의 발달>
(1)상고시대
최초의 시장은 《삼국사기》에 나온 490년(신라 소지왕 12)에 신라의 수도였던 경상북도 경주에서 열린 경사시(京師市)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신라의 서울인 경주에 세워진 최초의 관설시장을 뜻하는 것이지 우리 나라 시장의 효시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사가
퇴계의 무진육조소와 율곡의 동호문답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두 성리학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 글이다. 17세기 당시는 사림이 득세를 해나가던 시기였으며, 두 사람의 글 모두에서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유교의 근본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퇴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국가의 체계를 유지하고자 했던 고구려는 통치이념으로 충⋅효를 기반으로 하는 유교를 받아들여 이를 관리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다. 이를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교육시설인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소수림왕 2년(372)에 중앙에 태학을 설치하여 관리들에게
1. 부정적 역사 교육의 중요성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창시절에 받는 역사 교육에서 역사속의 인물들 중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인물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운다. 예를 들자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이순신 장군, 조선시대의 위대한 발명가 장영실과 같은 인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