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요, 성학십도 등을 지어, 주자의 이기 이원론을 더욱 발전시켜 주리 철학을 확립하였다. 그의 사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성리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주리 철학은 대체로 향촌에서 중소 지주적 경제 기반을 가진, 생활이 비교적 안정된 사림들이 발전시켜 나갔다. 이들은 경험적 세계
고려사 권71 악지2 ‘속악조’ 등에 실려 있는 <삼장>과 <쌍화점>과의 관계,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 등이 있으며, 그 외에 부수적인 인물들의 역할, <쌍화점>의 공연형태에 관한 논의, 작품의 음란성 여부와 주제 등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있어왔다.
본 발제에서는
고려사』악지 이 속락조에 실려있는 「쌍화점」의 제 2연과 같은 내용의 한시「삼장」과 그에 붙여져 있는 ‘작가지의’의 기록에서도 그러한 논란이 전혀 터무니없는 폄하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조 유학자들이 ‘음사’로 규정한 이래 「쌍화점」은 ‘남녀상열지사’라는 측면에서 주
흔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시대를 떠올린다. TV를 봐도 국가행사 때 나오는 복장들을 보면 조선시대 복장을 한 것이 대부분이다. 고구려나, 고려 등의 의복 등은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조선이 가장 최근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자료가 많아서 그런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고려사 권제5, 3장 뒤쪽, 세가 5 현종 15.5]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관측 기관은 어디일까? 바로 고려 초기의 기상과 천문을 관측하기 설치된 태사국(太史局)이락 한다. 태사국은 천문, 측후, 각루 등의 일을 관장하였던 관청으로 영(令:종5품), 승(丞:종7품), 영대랑(靈臺郞:정8품), 보장정(保章正:종8품),
장순룡은 근본이 회회족(回回人)이며 처음 이름은 삼가(三哥)이다. 그의 부친 장경(卿)은 원나라 세조(世祖)를 섬겨 필도적(必闍赤) 벼슬을 했다. 장순룡은 제국 공주의 겁령구로 와서 낭장 벼슬을 받았고 여러 관직을 거쳐서 장군으로 승진되면서 이 성명으로 고쳤다.
고려는 장인의 기술이 지극
고려사》 제128권 - 열전 제41 > 반역 2 > 정중부
→ 한뢰 등 문신들 살육 황혼이 깃들여 일행이 보현원에 접근하였을 때 이고와 이의방이 먼저 가서 왕의 명령이라 속이고 순검 군사 를 모아 두었다. 그리고 왕이 문에 들어가고 모든 신하들이 물러나올 때 이고 등이 직접 임종식과 이복기를 문에서 죽였
고려사」속악조에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는 <예성강곡> 옛날 중국 상인인 가두강이란 자가 있었는데 바둑을 잘 두었다. 그가 한 번은 예성강에 갔다가 아름다운 부인을 보고서 그녀를 바둑에 걸어서 그녀의 남편과 바둑을 두어 거짓으로 이기지 않고 물건을 갑절로 치러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이롭다
2. 고려 개성 궁터의 구성
건물배치는 정남(正南)에 승평문이 있었으며, 좌우(左右)에 동락정이 있었고, 신봉문·춘덕문·춘궁문·태초문이 있었으며, 장령전·연영전·자화전 등과 왕이 거처하던 건덕전이 있었다. 궁의 중앙에 정전(正殿)인 회경전이 있다.
회경전은 4개의 33단 돌계단 위에 자리하고
1. 서 론
고려사회에 대하 역사연구는 다른 시대의 역사연구와 마찬가지로 1960년대부터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고 많은 문제점이 제기 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고려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 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신라는 골품제사회 고려는 귀족사회, 조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