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부 → 일본 도쿄 → 만주 → 후쿠오카 현 후쿠오카 형무소
별칭: 윤해환(아명),히라누마 도오슈(일본식 이름)
학력: 일본 도시샤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제적
직업: 시인, 독립운동가
종교: 개신교(장로교)
부모: 윤영석(부), 김용(모)
친척: 윤일주(아우),윤광주(아우),김약연(외숙부),송몽규(고종사
제대를 하고 마을로 돌아온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마을의 몇몇 청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이 일할 때가 왔다. 우리가 굳게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나. 양지마을을 우리 손으로 가꾸어 잘 사는 마을로 만들어 보도록 하자.”
이 청년의 말에
경성이라는 근대적인 도시는 투명한 것이 아니라 불투명 그 자체이다. 그의 눈에 포착된 근대란 이중성의 모순덩어리인 동시에 안과 밖, 겉과 속, 열림과 닫힘이 교차하고 재교차하는 뫼비우스적인 세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글쓰기 주체가 근대적인 도시 속으로 단행한 산책은 불투명하고 불확정적
Ⅰ. 시인 연구 - 이상(李箱 1910 ~ 1937) 오세영(1998),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고려대학교 출판부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서울 출생이다. 1912년 부모를 떠나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집에서 장손으로 성장했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조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를 지냈
경성부 중앙고등보틍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1927년 4월 밀양군 표충공립보틍학교에 교원으로 재직하다가 1929년 5월 중앙불교전수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1931년 4월 현재의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도서관에 취직하였고, 1939년 3월 일본문부성 공공도서관 사서검정시험에 합격
제대 출신 남작의 아들이었으나 아버지가 주색과 투기를 해 남작 예우가 정지되었으며 수재로서 법학공부를 했으나 농촌 사람을 교화 되지 않은 야만인으로 생각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후에 허숭의 영향으로 개과천선하여 농촌 개혁에 뛰어든다.
- 한민교: 교직자로 재직하면서 뜻 있는 학생
제대, 일고생에 대한 열등감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 그가 입학한 법정대학은 어떤 학교인가?
사립대학으로서 제대나 일고 보다 수준이 낮은 학교였다. 당시 식민지 사왕에서 조선인이 제대나 일고에 입학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패배의식이 학교 문제로 더욱
어찌하여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였다.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성을 잘못 알아 '김상'이 아닌 '이상'으로 부르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우스개 같은 주장도 있었다. 1928년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생들이 졸업앨범에 한 마디씩 감회를 적는 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