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경성제국대학 (이하 경성제대로 약칭)은 일제의 식민지 착취기관인 조선총독부에 의해 1924년 5월부터 설립. 운영되다가 1945년 10월 미군정에 의해 미국인 총장과 교수가 임명되고 ‘경성대학’으로 교명이 변경될 때까지 만 21년 5개월간 우리나라에 존속하였던 식민지 대학이었다. 이 학교
1. 서론
경성제국대학(이하 경성제대)은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의 정체성을 논함에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성제대를 서울대의 전신으로 보고 있으며, 경성제대가 지닌 친일성을 서울대에 투영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서울대는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대학이라는
Ⅰ. 서언
경성제국대학은 설립과 운영의 주체가 누군인가라는 점을 잠시 접어둔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대학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대학은 일본식민지주의의 한국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의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명백히, 이
경성상업회의소였다. 1919년 9월, 경성상업회의소는 다음 달에 개최예정인 [전선상업회의소연합회] 회의에 고등교육기관의 증설 ․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안을 제출할 것을 결정했다. [조선대학]과 고등상업학교의 설립을 기둥으로 하는 이 건의안은 10월 9일부터 열린 [전선상업회의소연합회] 회의에
서구 근대화를 성립한 결정적 동기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대학이었다. 대학은 지식의 산고로써 방향성을 제시하였으며 그에 따른 국가의 발전론적 양상을 보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경우 이미 르네상스 이전부터 종교적 양상을 띤 교회 소속기관으로 써 신학을 연구하는 대학이 성립되었으
경성과 같은 거대도시를 배태한 하나의 매개지역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같이 식민도시가 갖는 일반적인 성향들을 바탕으로 조선의 수도이며 거대도시였던‘경성’과 대표적인 항구도시‘군산’의 근대도시화 과정을 각각 조사, 비교하면서 당시의 대략적인 도시일상의 모
해방 이후 반공체제에 의해 철저히 역사의 뒤편에 감춰져야했던 사회주의 운동가들도 당당한 우리의 민족투사였다는 것을 다시 각성하면서 오늘은 많은 사회주의자들 중에 ‘이재유’와 ‘이재유 그룹’의 활동, 그리고 그 이후의 다시 결성되는 ‘경성콩그룹’과 ‘박헌영’까지 얘기하고자 한다.
1. 머리말
일제 강점기 하에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조선의 절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들은 해외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를 구성하기도 하였으며, 일제와의 무장 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려고 하였다. 특히 1919년 3월 1일의 대대적인 운동은 이러한 노력들이 보
1930년대 조선의 시단(詩壇)에서 모더니스트를 자처한 김기림을 오늘날 다시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는 우리 시사(詩史)에서 1930년대의 모더니즘 운동이 우리 시문학의 현대적 전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거니와, 이 시기 싹트기 시작한 근대성에 대한 담론들이 당대 문학에서 식민지
2.2. 제2기(1912~1925) - 조선에서의 재야 연구 시기
1911년 조선총독부에 학무국 편집과속 겸 편집서기로 부임하여 조선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17년 5월에서 1919년 6월까지는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사와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교수를 겸임하였고, 1919년 6월에는 조선총독부의 교과서 편수관으로 임명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