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金南天)·이원조(李源朝)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성향이 비슷한 조선연극건설본부, 조선영화건설본부, 조선음악건설본부, 조선미술건설본부 등이 연합하여 조직하였다.
와 프로 예술 연맹 과거의 카프 단원이었던 송영(宋影), 이기영(李箕永) 등은 조선문학건설본부의 불
김남천의 『대하』. 오장환의 『성벽』. 이용악의 『오랑캐꽃』등이 이때 빼앗긴 책들인데. 『사슴』을 빼앗긴 일이 가장 억울했다. 다행히 『사슴』의 시들은 거의 외고 있었지만. 이 일로 나는 얼마동안 시를 읽는 흥미도 시집을 사는 재미도 잃었다. 생각해보니 60 후반 내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
김남천, 안회남 등이 서울로 돌아와 종로 2가 한청 빌딩에 조선문학가동맹 사무실을 열었다. 나는 김병욱이라는 후배 문인의 권유로 문학가동맹에 나갔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나는 위에서도 말했듯 사상을 넘어 그들의 문학과, 임화라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으로 동맹에 가입한 것이었다
김남천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문학건설본부>(1945.8.16)와 이후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1945.8.18)의 출범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을 현실화하는 데에는 순탄치 않는 노정(路程)이 예비되어 있었다.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이어 이기영과 한설야 등이 중심
김남천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대항하다 두 단체가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합쳐지자 바로 월북했다. 북한에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결성 초기부터 주도적인 활동을 전개해 1962년까지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외에도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 교육
김남천,이태준 등이 주도하여 1945.8.16 결성된 조선문학건설본부는 후에 나타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과 합류하여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확대,개편되었고, 1947.2월에는 전국문학자대회를 개최하여 그 좌익적 기치를 높여 민족주의 문학에 대한 공세를 폄.
이런 좌익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1945.9.8 민족
함으로써 도시 전체에 통용되는 일률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한다. 계산가능성, 정확성, 시간 관념등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는 일정한 틀안에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개인을 출현시켰다. 『사랑의 수족관』 김남천, 「사랑의 수족관 」, 『신문연재 소설전집 3: 1930년대-1940년대』, 깊은샘, 1987.
김남천, 이원조 등이 있다. 문학가동맹은 과거 카프가 고집한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민족문학의 건설을 지향하는 단체로 표방한다. 그들은 개방정책을 써서 순수문학자 출신의 다수 시인 순수문인 출신자로 김기림, 정지용, 오장환, 임학수, 여상현, 김동석 등이 있다.
과 작가들을 맞이한다
김남천, 한설야 등 구카프계열과 이효석, 이태준 등의 순수문학계열, 박태원, 김기림 등의 모더니즘 계열 등 유파적 다양성, 기타 미술, 음악, 연극, 영화, 잡지 편집에 관여하고 있던 당대 문학 예술인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김윤경, 조윤제, 정인승, 고유섭, 손진태, 안자산, 이명선
김남천·이태준 등이 중심이 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시부위원회(詩部委員會) 위원장을 맡았다. 6·25전쟁 때 납북되어1988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Ⅱ.작품소개
*바다와 나비*
1.역사주의 비평
김기림은 1930년대 중반 이후 모더니즘 시론(특히 주지주의)의 수립과 시 창작에 있어서 과학적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