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천(본명 김효식)은 한일합방이 조인된 이듬해인 1911년 3월, 평안남도 성천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김영전은 지방 유지로서 적지 않은 농토를 가진 공무원이었고, 인자한 성품을 지닌 그의 모친과 금슬이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김남천은 사회 신분과 경제 사정이 좋은 집안
* 김남천과 그의 문학사상 **
1. 김남천의 생애와 활동
● 1911 - 평남 성천에서 군청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남, 본명은 효식(孝植).
● 1929 - 평양고보를 졸업. 일본 호세이 대학 재학 중 카프 가입, 카프
동경지부 발행 동인지《무산자》에 임화, 안막, 이북만 등과 함께 참여.
● 1930 - 평양고
1. 머리말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고, 해방공간에서는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태동하고 그의 산물로 각각의 노선을 반영한 소설들이 발표되었다. 그 중, 해방이 되고 나서 2개월째로 접어드는 1945년 10월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946년 6월에 연재가 중단된 김남천의 〈1945년 8ㆍ15
김남천의 전향소설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
김남천은 바로 자신신념의 실체였던 카프조직을 자신의 손으로 해체시켜 역사적 비극성을 몸소 체험한 작가이다. 끊임없는 창작방법의 모색에서도 드러나지만 시대의 중압을 견뎌내려는 그의 몸부림은 하나의 의무감이자 양심적 실천에서 비
1. 김남천은 누구인가?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임화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
1. 김남천은 누구인가?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임화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
Ⅰ. 김남천에 대한 전기적 검토
본명이 김효식인 김남천은 1911년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중농이며 군청 공무원인 김영전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남천은 키가 180센티미터 이상이었으며 훤칠한 미남에다 성격이 깨끗하고 매우 고상했으며 말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이기영과는 비가 내리던 날 배갈을 마
전체적 의식
작가의 작품들을 이해하고 그 의식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인물의 행적을 알아보는 것은 필연적인 작업일 것이다. 더군다나 김남천은 소설가이기 이전에 비평가로서 자신만의 이론들을 주장했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는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추상적인 것을 지양하였
1. 작가의 생애
김남천은 1911년 평남 성천에서 중농이며 공무원이던 김영전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본명은 김효식이다. 1926년에는 평양교보를 다니며 한재덕 등과 ‘월역’이라는 동인잡지를 내면서 「문예전선」등속의 신흥문학에 관심을 가진다. 1929년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동경에 건너가 호세이 대
Ⅰ. 개요
1930년대 중반(상징적인 해가 카프가 해산한 1935년이다)을 기점으로 하여, 1930년대 전반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사상적 대립의 시기로 규정하고, 1930년대 후반은 이러한 사상적 대립이 해체되면서, 다양한 문학적 경향의 발전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가설은 1930년대 후반의 문학이 지니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