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의 주선으로 《조선지광(朝鮮之光)》에 취직하는 한편,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에 가맹했다. 31년 카프에 대한 제 1 차 검거로 구속되었다가 다음 해 석방되었다. 45년 월북하여 이듬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대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최고인민회의부의장, 조·소친선협회위원장,
조명희, 이무영 등이 보여 주는 농민들의 참상이다. 일제 수탈의 구체적인 현장은 농촌이었고, 그것은 곧 농촌 경제의 파괴를 가져와 당시의 농민들은 더 이상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유랑하게 된다. 이들은 이러한 피폐해진 농촌과, 토지를 잃고 간도나 만주로 떠도는 유랑민들의 삶을 그려 내었다. 이
조명희 : 1894년에 출생하여 일본유학 후 러시아로 망명하여 러시아지역의 조선인문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그녀는 조선독립과 혁명, 조선인들의 울분과 비극 등을 주제로 하여 작품을 창작하였고, 이후에는 시월의 노래, 볼셰비키의 봄 등을 발표하여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였
조명희를 만나 <카프>에 가맹하게 되었다. 1927년 카프의 1차 방향 이전에는 주로 그의 젊은 시절 체험한 빈궁을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썼으며 카프가 ‘예술의 볼셰비키화’를 위한 재 조직을 하자 출판부의 책임을 맡기도 했으며 카프 1차 검거 때 옥중에서 구상한 <서화>와 장편 <고향>을 발표하고, 문
굶주림에 허덕임.
거처할 공간이 없음.
먹고 살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자연히 계급의식이 생김.
생존 방식은 가진 자에게 목숨 걸고 투쟁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음.
준비론자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 나도향)
투쟁론자
(최서해, 박영희, 김팔봉, 조명희)
현실의 문제를 단
조명희-피압박계급의 방향제시
·이무영·심훈-농촌계몽소설
4. 현진건의 작가의식
1) 굴절된 지식인의 소외의식
20세기 초에 문학 활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중인층 출신들로 보여 진다. 그러므로 일본의 수탈에 시달리는 가난한 민중과 일치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 무렵의 문인들은 다소 선민
민촌은 현상공모 당선을 계기로 1924년에 상경하여 문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1925년에 조명희의 주선으로 〈조선지광〉의 편집기자가 되었다. 그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해 중앙위원 및 출판부 책임자를 지냈다. 1931년 KAPF 제1차 검거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2개월 만에 풀려났
조명희(趙明熙)ㆍ이기영(李箕永)ㆍ박팔양(朴八陽)ㆍ김양 등이다. 이들 두 단체를 비교해보면, 염군사는 높은 사회적 관심과 좀 얕은 문학적 교양을 가기고 있던 대신, 파스큘라는 사회적 관심이 전자 보다 낮고 문학적 교양에서는 높았다. 당시, 일본의 프로문학작가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방향은 이들
조명희의 〈낙동강〉 등이 브나로드운동, 즉 귀향 또는 귀농을 사건전개의 중요한 계기로 보고 있습니다.
이무영의 〈제1과 제1장〉·〈흙의 노예〉 등에서도 농촌으로 돌아와 농민의 삶을 배우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귀농의 동기와 목적이 다르고 그것이
조명희의 〈낙동강〉 등이 브나로드운동, 즉 귀향 또는 귀농을 사건전개의 중요한 계기로 보고 있습니다.
이무영의 〈제1과 제1장〉·〈흙의 노예〉 등에서도 농촌으로 돌아와 농민의 삶을 배우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귀농의 동기와 목적이 다르고 그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