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그것이 자라난 토양이었던 조선 말기에는 소리(음악)의 체계있는 인식이 모자라서 그 기록이 드물고 기보법(악보)도 없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 생성과 변화의 과정이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채로 오늘날 우리는 판소리를 문학의 측면에서 접근하기도 하고 연극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설을 외우고 노래와 이야기를 엇섞어 관중들을 울리고 웃기고 한숨을 토하고 비분을 젖게도 만든다. 무엇보다 노래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야기가 곁들여진다는 점은 단순히 판소리를 음악의 영역에서만 살펴볼 수 없게 할뿐더러 구비서서사문학으로도 이를 살펴보지 않을 수
적당히 긴 노래로 공연마당인 판에서 불리워졌을 것이다.
판소리는 무가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즉, 판소리가 판굿에서 벌어지는 여러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로 존재하다가 유별나게도 인기를 누리게 되자 판소리만 따로 독립하여 하나의 무대를 꾸미게 된 것으로 보인다.2)
행한 연설에서 판소리와 창극을 심하게 비판한 이후, 북에서는 점차 판소리와 창극이 사라지게 된다. 대신에 창극을 현대적 감각으로 개작한 혁명가극이 1970년대에 등장하여 "피바다"·"꽃파는 처녀"·"당의 참된 딸"·"밀림아 이야기하라"·"금강산의 노래" 등 소위 5대 혁명가극을 탄생시켰다.
적벽가」는 또 여자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 상황을 노래했기 때문에 수많은 장수와 군사들만 나온다. 또 「적벽가」는 호령하는 부분이 많아서 창자들이 부르기에 훨씬 힘이 든다.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와 전체적인 이야기 줄거리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세부 내용에 있어서는 완
판소리는 구비서사문학으로 본다.
풍자와 해학 등 골계적인 내용이 풍부하게 구사되어 있다.
③ 판소리 열두 마당과 다섯 마당
판소리로 가창되던 12편의 작품으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토별가)>, <적벽가(화용도타령)>, <배비장 타령>, <변강쇠 타령(가루지기타령)>, <강릉
창극조로 두서너 시간에 걸쳐 부르는 민속예술형태의 한 갈래이다. 1965년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판소리의 발생기는 여러 평민문화가 발흥하기 시작한 조선 숙종 무렵으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토별가, 적벽가,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무숙이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판소리의 형성과 발전
- 판소리의 형성과 전개
: 판소리가 처음 어떻게 발생했는지는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다. 판소리의 연원에 대해서는 문장체소설 기원설 · 설화기원설 · 중국 강창문학 운문과 산문이 섞여 있는 연예양식적 성격이 강한 중국문학의 한 양식. 문자 그대로 이야기(講)와 노래(唱)
> <적벽가> 등 6마당으로 체계를 세우고, 그 대문과 어구를 실감나게 고쳐 독특한 판소리 사설문학을 이룩하였다. 특히 <박타령> <토끼타령> 등은 창극화까지 하였으며, <광대가(廣大歌)> <도리화가(桃李花歌)> 등의 판소리단가와 판소리 가집(歌集)인 <신오위장본(申五衛將本)> 등의 작품을 남겼다.
판소리 문학」이 중심이 될 것임을 밝혀둔다.
Ⅱ. 판소리계 소설의 발전
1. 명칭의 재고(再考)
숙종조를 전후하여 귀족중심의 문학이 평민중심의 문학으로 확산되면서 가창(歌唱)을 위주로 하는 희곡적인 문학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명칭을 ‘타령(打令)’이나 ‘창극(唱劇)’ 등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