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종교이지만, 고려시대 말기에 안향(1243∼1306년)이 국내에 처음 도입하고, 고려 말의 신진사대부(권근, 남은, 조준, 하륜 등)와 정도전(1342∼1398년)이 조선을 건국할 때 유교사상을 건국이념으로 삼음으로서 국내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태종(1367
유교는 성리학의 단계에 이르러 天人性命에서 禮樂刑政을 포괄하는 정밀한 이론체계를 구축하고 관계 맺음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계를 정치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그들은 '관계 맺음을 욕구하는 존재(-欲求體)'로서 인간이 보여주는 일상적 모습에 기초하여 '인간에 의한 인간의 실현'을
설총(薛聰)은 이두(吏讀)를 창시하여 구경(九經)을 해석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유교는 유능한 관리를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었고, 부차적으로는 지도계급으로 하여금 경사(經史)에 통하게 하고 사부(詞賦)와 문장을 능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의 숭불정책(崇佛政策)으로 유교가
Ⅰ. 갈암 이현일의 활동 배경
갈암이 활동하였던 숙종년간은 조선조에 있어서 당쟁이 가장 극열하였던 시기였다. 연산조 이후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에서부터 시작된 당쟁은 선조대에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된 이후 다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었으며, 현종년간에서부터 시작된 `禮訟`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