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료분석을
통해 본 세계관
『삼국사기』「백제본기」
及<朱蒙>在<北扶餘>所生子, 來爲太子. <沸流><溫祚>, 恐爲太子所不容, 遂與<鳥干{烏干}>??<馬黎>等十臣南行, 百姓從之者, 多.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았던 아들이 이곳에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자신이 태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沸流國)의 송양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주몽을 보고 근본을 따
져본 후 서로 복속하기를 강요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활쏘기를 겨루
어 송양을 굴복시켰고 다음에는 송양의 고각
(鼓角)을 훔쳐 왔다. 마침내
백록(白鹿)을 잡아 거꾸로 매달고 주술로 비를 오게 하여 송양왕을 항복
받기에 이른다. 이 내용
沸流)가 다스리던 백성을 합쳐 더 큰 나라를 만들 때 비류의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하여서 나라 이름을 백제로 고쳤다는 설명이 있고,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隋書)에는 백여 호(戶)가 바다를 건너[百家濟海] 남하하여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백제라고 하였다고 쓰여 있다.
[출처 http://baekje.chungnam.net/histor]
沸流), 숙신(肅愼. 읍루[相婁]), 양이(良夷), 양주(楊州), 예(濊), 옥저(沃沮), 유(兪), 임둔(臨屯), 조나(藻那), 주나(朱那), 진(辰), 진번(眞番), 청구(靑丘), 추(追),한(韓. 삼한[三韓]), 해두(海頭), 행인(荇人), 현도 등이 있었다.
당시 조선은 가장 북쪽에 있던 부여에서 가장 남쪽의 한(韓)에 이르기까지 하느
沸流國) 의 왕 송양(松讓)의 항복을 받았고, BC 34년에는 성곽과 궁실을 건립하였으며, BC 33년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BC 28년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켰다.
(2) 해모수 [解慕漱, ?~?]
동명왕개국설화에 나오는 인물로, 흘승골성(訖升骨城:大遼의 醫州地方)에 도읍을 정한 뒤 천제(天帝)의 아들이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