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구조 속에서 쉽게 부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황은 현실에 참여해야 하는 유자(儒者)이면서 부패한 현실정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도덕주의적 성향을 지닌 인물이였다. 우리는 이황의 생애와 시를 통해 그가 후학에게 일깨워 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황과 이이가 등장하면서 조선의 성리학은 근원지인 중국을 넘어서는 것이 되었다.
율곡은 퇴계를 가리켜 유교에 바탕을 둔 이상적인 왕도 정치를 주장했던 정암 조광조와 빗대어 경세의 측면에서는 몰라도 학문의 측면에서는 퇴계에 못미친다고 하였고, 퇴계는 율곡을 두고 “後生可畏”, 즉 뒤에
문학의 장식적인 기능을 중시하고 수준 높은 한시를 쓰는 관인문학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5세기 말 이후, 점차 유미적, 퇴영적 색조를 띠면서 위세를 잃어갔고 16세기에는 산림 처사로써 자신의 은거를 자위하는 은일가사에서부터 가사문학 양식을 발전시킨 지방의 사대부(士林)들의 처사적 문학(사림
문학 속의 대화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Ⅱ. 작 가 론
Ⅱ. 1. 서포 김만중(金萬重)의 생애
Ⅱ. 1. 1. 선생 유복자
김만중은 1637년 2월 10일 병자호란의 와중에 피란 가던 배 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익겸은 강화도가 함락될 때 선원 김상용과 함께 화약에 불을 질러 스스로 산화했기 때문에
문학론으로 정착되니까 지는 精深한 사려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書經으로부터 魏文帝의 단편적인 언급(典論)을 거쳐,梁의 유협(文心調龍)과 周榮(詩品)에게서 초기 비평형태를 접하게 되었다가, 宋代 歐陽脩의 六一詩話 이후로 비평문학의 울흥을 보게 된다. 우리의 역시 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