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1) 채만식의 사상채만식은 1920년대 말엽에 크로포트킨과 마르크스를 탐독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이론적으로 탐구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었다고 해서 당시 문단 최대 집단이었던 카프에 동참하거나 적극적으로 작품에 이데올로기를 표현했던 것은 아니다. 채
작품이 아무리 작가의 상상력과 가상 세계를 토대로 한다고 해도, 작가의 가치관이나 사상 및 사고방식을 토대로 창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무의식으로부터 독립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작가론 수업의 발표를 통해 얻은 것이 매우 많다. 작가로서의 채만식과 그의 작품세계, 그리고 대표
국어국문운동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또 하나의 민중운동은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치개역운동이다. 독립협회운동은 민간 주도의 근대적인 정치운동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고 있거니와, 대외적으로는 자주 독립을, 대내적으로는 근대적 민권 사상에 기초한 정치 개
사상 등 이른바 근대적인 사상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신소설의 초기단계는 근대적인 계몽주의로서의 정치적 성격을 띤 작품들이 많았다. 이인직의 ‘혈의 누’와 ‘은세계’, 이해조의 ‘자유종’등이 이런 예이다. 그러나 국권상실 이후의 신소설은 정치적 성격이 줄어든 대신 흥미 위주로 변질
언표되는 민족의 발견에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예언자적 기능은 1930년대에 이르러 대두되었다. 그 중심에는 무교회주의와 관련된 《성서조선》지의 김교신, 함석헌 등이 있었다. 무교회란 교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기독교가 제도이며 조직체일 수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