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위에 군림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동양 특히 중국에서 민중에게 가톨릭과 같은 역할을 했던 불교(佛敎)는 중세유럽에서 가톨릭이 누렸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에 의해 한갓 인민지배의 도구로서 이용되었다. 중국불교의 긴 역사를 통해 국가권력은 불교가 국가의 목적하는 바에 부
불교가 지닌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의 호소력을 지닌 가르침이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역시나 간과 할 수 없는 요소는 각 지역마다의 지역을 근거로 존재했던 국가와 같은 정치권력의 수용이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중국에 있어서 이러한 특성은 더
국가권력과 종교> 일조각, 2000. p.72
는 말은 결국 종교의 본질적 속성에 상관없이 종교가 역사상 왕권의 존립과 그 정당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천하에 오직 나 한 사람’을 의미하는 ‘여일인(余一人)’이 갑골문에서 확인되는 것을 보면 유일한 주권자의 의미가
국가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것에 의존한다고 생각되었다. 불교교단은 이러한 정법을 보호하고 전승하는 자인 데 비해 국가는 법을 운용하는 주체였다. 불교교단은 의연히 국가권력에 대해 주체성을 고수하면서 불교교단은 세속권력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하였으며, 치외법권의 특혜를 보장받았다.
국가와 신도의 결합 강화
신사에서의 불교적 요소 일소(신불분리) - 처음 취지는 신도와 불교의 명확한 구별
그러나 신사의 실권을 불교에 빼앗기고 있었던 신관들이 결국 과도한 폐불 추진 -> 불교 쇠퇴
1 .메이지정권에 의한 불교 재편정책에의 적극 참여하는 방식 : 교단불교 중심
(국가권력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