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서푼짜리 오페라(1928)》 《마하고니시(市)의 흥망(1929)》이다. 이 두 작품은 K. 바일이 곡을 붙여 성공한 음악극인데, 브레히트의 서사극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뜻깊다.
감정이입을 중심으로 한 <연극의 희곡적 형식>에 <연극의 서사시적 형식>을 대치시킨 브레히트의 시도가 작품
연극의 발상을 발전시켜, 사회 기구를 비판하는 희곡에 많이 반영시켰다.
1920년대 후반부터 마르크스주의에 접근하여, 교화(敎化)를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교육극과 고리키의 작품을 각색한 《어머니 Die Mutter》(1930)와 《도살장의 성(聖) 요한나 Die heilige Johonna der Schlachthöbe》(1932)를 썼다. 1933년
브레히트는 뮌헨 캄머슈필레 극장의 희곡 전문가가 된다. 그는 성악가 마리아네 초프와 결혼하며 이들 사이에서 딸 하네가 태어난다. 이렇게 그의 희곡이 공연되기 시작하며 그는 점차 희곡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결국 1924년 연극을 비롯한 문화 활동이 활발했던 베를린으로 이주한다.
서사극 이론’은 현대 연극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 중 서사극 연기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기와 함께 현대의 연기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학생으로서 브레히트작품을 할 때나 그의 이론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의 연기론으로 배우들과 작품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작품 활동의 초점을 전적으로 반파시즘적 투쟁에 맞추었고 자신의 작품의 테마와 언어를 그 방향에 정향했다. 초반에만 해도 그는 자신의 그러한 활동을 통해 독일에서 반 파시즘적 세력들이 강해져 이들이 정치적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랬다. 그는 파시즘에서 ‘야만의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