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했고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로 개편하여 식민사학의 심화·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조선사편찬위원회의 설치는 1921년에 이미 齋藤實총독의 발의로 계획되었다. 이때 계획된 《조선사》는 1921~26년의 5년간에 걸쳐 완성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한국사회에 대한 관습조사
사관 그리고 역사적 사실의 고증적 인식을 주로 하는 실증사학으로 크게 분류 될 수 있다.
실증사학계로써 해방이후 국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하여 대학에서의 후계 양성 등 역사학계를 이끌어 간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되던 이병도의 삶과 그의 역사인식의 내용과 한계 그리고 사학사적 의의에 대해서
조선연구의 강화였다.
일제는 1920년대 중반부터 이를 제도적으로 추진하고 지원하기 위한 관학 연구조직을 체계화하였는데, 1925년 조선사편수회의 설치와 그 결과물인 『조선사(朝鮮史)』(1932)의 편찬이 대표적이었다. 또한, 총독부의 지원 하에 청구학회, 경성제대 조선경제연구소 등 일본인 관학자
사학의 발전과저을 살펴보았다.
Ⅱ. 본론(本論)
1. 근대역사학의 성립과 민족주의적 역사의식
우리 역사학이 근대역사학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로서 근대성을 가져야 하는 학문적 전환과 식민사관에 의한 한국사상(韓國史像)의 왜곡에 맞서야 하는 역사의식의 문제가 전제되어야
조선사편수회에 관한 연구가 요구된다.
2.조선사편찬위원회조선사편찬위원회의 설치는 1921년에 이미 제등실총독의 발의로 계획되었다. <<海日申報>>. 1922년 12월 6일
이때 계획된 <<조선사>>는 1921~26년의 3년간에 걸쳐 완성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한국사외에 대한 관습조사도 겸하고자 하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