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편찬에 관한 업무가 제도적으로 중추원과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선임된 직원들도 중추원 촉탁의 자격으로 편찬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편찬위원회가 중추원 내에 설치된 것은 중추원이 구한국 때의 전직관리들로 구성되어 있어 한국사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한국인을 이용
식민통치의 전 기간을 통하여 계속 되었으며 한국사의 왜곡과 식민사학의 부식도 이러한 식민통치의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일제는 ‘조선사편찬위원회’ 및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우리민족의 역사왜곡 및 식민사학의 발전을 추구하였다.
본문에서는 ‘근대 관찬사서의 변화’와 ‘
식민사학의 식민통치상의 기능을 밝히는데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에 관한 연구가 요구된다. 이 시간에는 조선사편수회에 대해 알아보겠는데 조선사편수회의 설치와 구성․ 조선사의 편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2. 본 문
1). 조선사편수회의 설치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회에서 《조선사》의 편찬강령을 결정한 것을 시작으로 사료수집에 착수하였다. 동년 5월에는 도지사회의에서 「조선사료 보존에 관한 협의회」를 개최하여 지방관청에 소재한 관변사료의 보존 및 수집을 지시하는 한편 <史料借入規定>을 정하여 전국에 산재한 민간자료의 採訪에 주력하였다. 채
편찬사무를 담당하는 수사관(修史官) 3명, 수사관보 4명, 서기 2명을 두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근대의 역사 인식이 반영된 근대 관찬사서의 변천에 대하여 간략히 알아보고 대표적인 관찬기관이자 일제 식민사관의 확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조선사편수회 안에 감추어진 내막에 대하여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