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장르다. 경기체가는 26수에 지나지 않아 수적으로는 비록 적으나, 그것의 문학사적 가치는 우리 시가사에서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할 것이다. 경기체가의 이같은 실상에 주목하여 근대적 국문학연구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 기원과 생성, 발전, 변천, 작자, 주제, 장르 등에 관한 상당한
5) 문학사적 의의
퇴계의 문학에 대한 생각은 한시뿐만 아니라 시조의 창작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한시와 시조가 성정을 기르는 데 같은 구실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조 <도산십이곡>의 발문은 그의 시가에 대한 생각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를 보면
시가 한국 시단을 풍미할 때 일어난 시조부흥 운동을 계기로 음악적인 요소와는 달리 문학사적인 위치를 정립하게 된다. 최남선은 시조부흥운동을 통해서 시조시집 『백팔번뇌』(1920)를 펴내고 시조를 이전 가집에서 곡조와 작가에 따라 분류한 것을 새롭게 바꾸어 작품의 내용에 기준하여 분류하였다
시가의 대표가 되는 단형시(短型詩)로서 오늘에도 그 형식의 시조가 창작되고 있다.” 이태극, 『시조개설』, 반도출판사, 1992 -이정자, 『시조 문학연구론』, 국학자료원, 1987 16쪽에서 재인용
라고 하였다.
본 발표조는 조선조 시가문학의 꽃이자 ‘국민문학’이라 평가받은 시조에 대해 고찰하
Ⅰ. 시가(시가문학)와 전환기시가
1860년에 崔濟愚가 득도하면서 지은 東學歌辭로부터 민중의 각성과 만민평등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차츰 지배체제를 부정하고 민족을 수호하려는 근대적인 민족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므로 1860년부터 3.1 운동 전까지는 근대문학으로 전환되는 과도기라 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