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라는 일종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책에 실려 있는데, 길이가 짤막한 글이다. 그래서 원작(原作)이 그대로 실린 게 아니라 축약되어 실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동운부군옥■■의 책 성격을 감안할 때 혹 그럴 가능성도 있다. <최치원>이나 <호원>의 경우 ■■대동운
운부군옥본, 해동잡록본 3종이다.
이 가운데 가장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의 김현감호이다.
그런데 대동운부군옥은 출전을 확실하게 수이전으로 밝히고 있고
삼국유사는 이야기를 채용하면서 편자의 인식이나 강조점에 따라 제목을 흔히 바꾸기 때문에
호원이 수이전의 원래 제
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권20과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고 있다.
이미 소실된 《수이전》의 일문 수편은 《대동운부군옥》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 지귀의 비련을 그린 <심화요탑>이 같은 책 종권 <탑>조에 쌍행사간의 간결한 문장으로 전해져 있다.
《삼국유사》
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등에 간략하게나마 보인다. 예종이 서경의 팔관회(八關會)에 참관했을 때 허수아비 둘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말에 앉아 뜰을 뛰어다녔다. 이상히 여겨 물으니, 좌우에서 다음과 같이 그 경위를 설명하였다. 그 둘은 신승겸과 김락으로, 태조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가 궁지에 몰
운부군옥에 전재되어 전하는 설화로, 화재 예방을 위한 풍속을 사랑과 연관시켜 문학적으로 형상화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조에서는 이러한 지귀설화를 좀 더 깊게 이해해보고자 지귀설화에 나타나는 두 가지 주제를 중점으로 조사를 해보았고, 이와 관련된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서 지귀설
부분적으로 실려 전해지기 때문에 수이전의 작품들을 수이전 일문이라 함.
13세기 각훈의 『해동고승전』과 일연의 『삼국유사』
15세기 성임의 『태평통재』, 서거정의 『필원잡기』, 노사신 등이 편찬한 『삼국사절요』
16세기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
17세기 권별의 『해동잡록』
운부군옥, 해동고승전, 태평통재 등에서 볼 수 있다.
설화는 어느 시대나 문학의 사회학적 기능을 살피는데 큰 역할을 했다. 최근 설화는 우리의 사회, 문화적 코드 안에서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영화, 소설, 공간, 조형 등 여러 가지 문화 텍스트의 모습으로 소재화되고 그 서사구조와 캐릭터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