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의 8구체와 동질적인 것으로 볼 수 없으며, 향가는 3음절 중심임에 비하여 이 작품은 2음절 중심이라는 데 두고 있다. 이러한 견해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은 장르적 성격 판단의 기준으로 겉으로 드러난 형태에 둔 점이다. 종래에 2연시로 보아 왔던 이 작품이 앞의 해독에 따르면 단연시
고려 시대까지 향가 문학이 계속되어 온 것을 보여 주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고려 초기의 일일 뿐, 향가는 고려 초 이후부터 쇠잔해지기 시작하였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나 의종 때 정서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정과정곡>은 향가의 잔영이 남아 있는 고려가요라 할 수 있다. <도이장
고려속요는 음악을 다루는 敎坊 등에 전하다가 조선 시대에 <<樂學軌範>>과 <<樂章歌詞>> 등에 정착되어 전한다.
2. 청산별곡
고려가요 전체에 관한 연구에는 가장 활발히 논의되었던 기존 연구는 語句 解釋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양주동은 「麗謠箋註」에서 어학적 설명을 위주로 하여
향가’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광의로는 중국 한시에 대한 우리의 독특한 시가라는 뜻이라고 하겠으나, 협의로는 신라 시대로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는 사이에 제작된 향찰로 표기된 시가를 이름이라 하겠다. 따라서 향가라 하면 도솔가나 사뇌가를 포함한 이 시기의 모든 시가의 총칭이었을 것으로 추측
고려시대의 시가를 전체적으로 포괄하여 가요나 장가라는 명칭보다는 별곡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는 견해가 있다. 즉, 신라 사람들이 자기네의 노래를 향가(鄕歌)라고 일컬은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 사람들 중국계(中國系)의 악부(樂府)니 악장(樂章)이니 하는 정악(正樂) 또는 아악(雅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