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대한 일종의 자존심이 스며 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이 지닌 풍부한 상징성, 담대한 스케일과 치밀한 구성력 등은 다른 화가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쾌대가 더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의 작품들이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현대미술이 지니고 있는 문제들을 총체적으
I. 들어가며
중간발표에서 우리조는 월북화가이쾌대의 유년시절, 미술수업기, 아내 유갑봉과의 만남, 형 이여성의 영향, 그리고 그가 월북한 동기 등 그의 삶 전반에 관한 것을 알아보았다. 이번 기말발표때는 아내 유갑봉이 지켜내 우리에게 알려진 화가이쾌대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의 미술세계를
화가였다. 이를테면 시인 백석이 남한에서 푸대접 받아온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쨌거나 해금이 된 후 이쾌대는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이 대단하긴 대단했던 모양이다. 최열(미술 평론가,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원)은 이쾌대를 뿌리 깊은 나무에 비유했다. 어떤 기법이나 양식이든 자
Ⅰ. 작품 선정 배경
ⅰ. 이쾌대의 업적
화가이쾌대가 한국 미술사에 기여한 바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일제강점기 하에 사회와 거리를 두지만 비판은 하지 못했던 다른 근대 화가들과는 다르게 한국 근대 미술의 실체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첫째로 그는, 그 때 그 때의 한국 근대 미술의
미술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돌아와 휘문고보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1932년 휘문고보 오학년이었던 이쾌대는 제 11회 선전에 「정물」을 출품하여 입선했으며, 그해 가을 제 3회 <전국 남녀 학생 작품전람회>에 중등 회화부에서 「자화상」으로 삼등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