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가의 악곡은 서경별곡에 비교해 볼 때, 여음이 없어 실질적 내용만으로 가사가 배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여음이 없는 사실로 미루어 정석가가 서경별곡에 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새로운 가사를 얹을 때, 여음 부분에 적당한 가사를 얹는 것은 당시 문헌에 흔히 보이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고려가요의 범주로 넣기에 모호한 면이 있다.
고려가요를 좁은 뜻으로는 속요만을 말한다. 민요에 기반을 두고 있어 소박하고 곡진한 감정을 담고 있는 서정적 성격의 속요와 신흥대사부들의 새로운 세계관을 특정 형식에 담은 교술적 성격의 경기체가는 향유계층의 이념과 역사적 성격, 표현기법에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장르의 시가들이 시대를 달리하거나 혹은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다. 그 중 향가, 경기체가, 시조, 가사는 고려시대에 창작되고 가창되었고 각기 독립된 장르로 다루고 있다. 김광순 외, 『한국문학개론』, 경인문화사, 2009. p.72.
속요는 조선이 세워진지 100여년 이상 지난 뒤에야
이해해야만 그 이유와 의미가 드러난다. 향가는 신라 이래의 귀족문학이었고, 고려 전기에는 신라의 전통을 이은 문벌 귀족이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상층 문화를 담당했기에 어떤 형태로든지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무신란이 일어나자 문벌귀족의 지배체제가 무너지자 향가를 이을 수 있는 기
이해와 감상
속요 전반을 흐르는 대표적 정서가 님의 不在에 대한 외로움과 그리움인데 그 원인은 이별로부터 시작된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대표작으로 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노래한 민요풍의 전통시로 별리의 걸작으로서 소박하고 애절하고, 이 노래의 이별의 정은 국문학의 여성적 정조의 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