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묘선』의 『원자집』과 『형자집』의 분석을 통하여 『고산구곡가』의 시 세계를 더욱 명확히 밝혀보려고 한다.
2. 우흥
율곡은 주자의 『무이도가』를 정언묘선의 형자집에 분석해 놓았다. 즉 『무이도가』를 한미청적의 품격을 지닌 것으로 본 것이다. 이 품격의 특징에 대해 율곡은 다음과
정언ㆍ사헌부지평 등의 대간직, 홍문관교리ㆍ부제학 등의 옥당직, 승정원우부승지 등의 승지직 등을 역임하여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아울러 청주목사와 황해도관찰사를 맡아서 지방의 외직에 대한 경험까지 쌓는 동안, 자연스럽게 일선 정치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하였고, 이러한 정치적 식견과
1)조선왕조 한문학의 정착
(1)전반적 양상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불교를 이념으로 삼은 귀족을 대신해 유학을 내세우는 사대부가 집권층으로 등장하였다. 사대부는 신분적 특권보다 스스로 쌓은 실력을 정권참여의 자격요건으로 삼고 도의와 염치에 입각하여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其三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봐도 녀던 길 알페 잇네
녀던 길 알페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고인이 성현을 지칭한다는 것은 우리들 모두 잘 안다. 그러므로 배운다는 것은 성현이 가던 길을 그대로 본받아 따르는 것이다. 진리는 내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견
㉣ 방황과 홀로서기
율곡은 나이 열 셋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이때부터 문장이 날로 성취되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그런 명성과 기대 못지않게 그의 학문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과 갈등은 더욱 커져갔다. 자신을 알아준 문장가 송인(宋寅)에게 보낸 다음 글은 그의 이러한 갈등을 단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