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예를 발달케 했던 것이다. 한편 불교나 도가사상도 유학이 주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 나름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고 있었으니, 불교회화와 사찰건축 및 산수화에서 특히 그러한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대미술의 특기할 만한 현상으로서 민화의 발생과 전개를 들 수가 있다.
회화가 펼쳐졌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격조 높은 남종산수화와 이를 소화시켜 우리의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 풍속화, 민화는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높은 수준의 회화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사대부화가, 화원화가, 서민화가들의 그림으로 분류되면서 화풍, 기법, 미의식에서 각기 다른 양상
화풍이 형성되었다. 후기(1700~1850)에는 신분상승의 욕구에 의해 사대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시․서․화를 겸비하고 이를 향유하는 문인풍조가 서얼출신과 중인층에까지 확대되었다. 따라서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고, 품평하고, 수장하는 등의 회화활동이 더욱 활발해졌으며 진보적인 지식인
산수를 배경으로 삽입시켜 서정 적인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
· 대표적인 작품은 파적
사인풍속도
사대부의 생활상을 그린 것으로 수렵도 ·계회도 · 시회도· 설중방우도 · 평생도 등의 주제가 유행
선민풍속도
일반 백성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다룬 것으로, 풍속화의 대부분을 차지
화원들에게는 생소한 느낌의 양식이었으리라고 믿어진다. 당시로서는 가장 새로웠을 이러한 화풍이 강희안과 같은 선비화가에 의해 전래되고 수용되었음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며, 당시의 한․중 간 문화나 회화의 교섭이 활발하였음도 짐작케 한다.
조선초기의 회화조선시대의 회화는 사대부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