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는 리에 대한 학설을 더 명석하게 밝혀 놓았다. 주희는 말한다.
“형이상인 것은 모습도 없고 그림자도 없다. 이것이 이치이다. 형이하인 것은 형상도 있고 모양도 있다. 이것이 사물이다.”
한 사물은 그 이치의 구체적 실례이다. 만일 이러한 이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이러한 사물도 존재
인간 심성(心性)의 구조,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세(姿勢) 등에 관하여 깊이 사색함으로써 한․당의 훈고학이 다루지 못하였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내성적(內省的)․실천철학적인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유학사상을 수립하였다. 그 내용은 크게 나누어 태극설(太極說)․이기설(理氣說)
주희의 견해를 답습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수양과 실천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한국적인 성리학의 기초를 다졌다. 이 논쟁은 총 4번의 서신 교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1) 태극관(太極觀)
이언적에 있어서 태극이란 만물의 근원이자 모든 변화의 원인이며, 따라서 그것을 영원불변한 것이
대한 주와 해석을 주로 하는 소위 훈고학을 이루었다. 그러나 송, 명 시대에 이르러 유학은 정치적 또는 종교적 사회체제의 변화에 따라 노불 사상을 가미하면서 이론적으로 심화되고 철학적인 체제를 갖추게되면서 천리, 성즉이 등의 여러 학설이 나왔다. 이것을 주희가 집성, 정리하여 철학의 세계를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유학의 부흥을 위해서는 공맹(孔孟)의 유학과 같은 옛 것만을 외칠 순 없었다. 단지 수양(修養)과 위정(爲政)을 위한 학문을 넘어 당시의 지배적 사상인 도교와 불교에 대응하는 형이상학적 우주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유학은 사람들에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