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더불어 독일 철학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칸트의 삼비판서가 나온 후에는 칸트의 삼비판서를 경계로 하여 근세철학사를 칸트 이전과 칸트 이후로 나누고 있다. 칸트의 사상의 그의 주저인 3대 비판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인식이론을 담고 있는 「순수 이성 비판」 도덕철학의 문
것은 명백한 모순이 아니냐고 반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칸트는 이 할 수 없다와 할 수 있다는 주어는 조금 구분되어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답할 것 같습니다.
즉 할 수 없는 것은 육체이고 해야하는 것은 인간이 그것을 해야할 때, 영혼을 가진 인간은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숭고론을 오늘날의 예술에 적용하려는 미학적 시도들이 의미를 획득해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한 그 같은 많은 시도들은 마치 칸트가 숭고의 개념을 자기 철학의 한 “부록”으로 수용했듯 그의 숭고론을 자신들의 이론적 기획을 위해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데에 그치고 말 것이다.
'모든 인간의 자유'가 마침내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가 누구에게도 양도될 수 없는 보편적인 것이며, 원칙적으로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선포하였다.
계급사회를 타파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인 자유가 실현됨과 동시에 칸트의 세 비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눈뜨게 하고, 여기에다 그 후의 모든 사상적 노력의 숨은 기초를 뿌리박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뉴턴, 루소를 두 개의 기둥으로 삼고 D.흄을 부정적 매개체로 하여 중세 이후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그 밑뿌리까지 파고들어 전면적 재편성을 시도함으로써 비판철학을 탄생시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