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지식인의 상관관계를 논의하였다. 하지만 벤야민 생전에 이 둘의 조합은 끝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에서 그의 역할:
당시 누구도 미학적 논의를 하려 들지 않았던 대중문화-사진, 영화, 영화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종래의 예술과는 완전히 결별한 현대예술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정확히 구획지어 언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실제로 현대의 영화에서는 그것이 영화의 전체를 책임지고 있든, 그렇지 않고 한부분에서 도구적으로 사용되고 있든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례로 영화가 유일한 대중 매체로 받아들여진 시대와 사회의 재현
된다.
이렇게 개인의 창조적 예술의 시뮬라시옹이 반복되면 누군가는 창조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감상하는 입장에서 예술이 가졌던 영향력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예술의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반면, 19세기의 철학자인 발터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중 그가 말하
위의 미술관에 소장된 유명한 그림을 떠올려 보라 했을 때, 한 두 점 이상은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이는 고등교육을 받은 현대인이라면 많은 이들에게 공통된다. 진품을 한 번도 본 적 없이 그 그림을 떠올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복제기술이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의 등장으로 예술작품의 아우라(Aura)가 몰락한다”는 그만의 독특한 언어―즉, 텍스트―로 현대 대중문화의 징후를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벤야민은 아렌트 H. Arendt, 1906~1975
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당대에는 비주류 학자였다. 동시대인들에게는 인정받을 수 없고, 사후에야 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