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으로 다시 구분 짓는다. 이러한 구분과 동시에 이를 획득하는 하나의 범주를 나누는데 이것은 선험적(a priori)으로 인간에게 주어 진 것이다. 후자는 판단의 형식을 제공해주는 지식이며 이것은 선험적 종합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선험적인 원리와 범주를 어떠한 근거로 사물에 적용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것을 통해 자연을 지배함으로써 인간 삶의 풍요를 가져오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거기에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필요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자연관 역시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물리학적 자연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고대의 자연관에는 정신적
지식의 주체이자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인간만이 자신에 대해서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자기 반성적 존재라는 말이다. 그래서 현대철학과 현대신학은 인간론에 집중되고 있다.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인 막스 쉘러(Max Scheller)는 철학의 문제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Was ist der Men
대한 인식을 구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회로 해서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자신에 나타나는 대상이 어떤 종류의 대상이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예컨대 그 대상은 말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을 칸트는 사고의 작용, 특히 오성의 작용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대한 모든 과학적 개념 사이의 갈등’이라고 말한다. 그 후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 1887)》가 유럽 윤리 사상의 비판서로서 출판되었으며, 이때 이미 《힘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가 준비되었으나 미완으로 남게 된다. 88년에는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이 사람을 보라》,《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