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향유층에 대하여」,『민족문학사』4호, 민족문학사연구소, 1993. 고미숙과 강명관은 사설시조는 부농, 역관, 상인들을 포괄하는 다양한 중간 계급의 물질적, 이론적 지원 위에서 그들에 의에서 적극적으로 향유되었다고 보았다.
를 비판하였다. 즉 여항인을 계급적으로만 이해하는 계급적 시각
시조에 작가층이 사족층 내부에서 다층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3) 신흠 시조의 창작배경
신흠의 시조는 계축옥사 이후에 겪게 되는 정신적 혼란과 충격으로 배태된 것으로서 그의 시조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 계축옥사에 대한 그의 정신적 충격을
이해하고 성리학을 체계화 하였다.
고려전기와 고려후기 사이에는 이질성이, 고려후기와 조선전기 사이에는 동질성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는 고려후기 신흥사대부가 주장하던 사상과 문학이 조선전기에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유학 사상이나 한문학, 경기체가, 가사, 시조 등에서도
국어 교과를 도구 교과라고 한다. 이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과의 교수․학습이 말하기․듣기․읽기․쓰기의 언어활동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 과학, 수학 등 모든 교과의 교수․학습이 다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학습의 도구로 언어를 잘 사용할 수
시조, 가사 등에서도 지속성이 인정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에 나타났던 문학은 고려 후기 동안에 모색한 바가 구체화 된 것이며, 조선 전기 동안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조선 후기까지 일정한 기능 또는 역기능을 했기에 깊은 관심을 가질 만하다. 왕조 교체기의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