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골간인 돈오점수를 선문(禪門)에서 역기능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이론과 이론의 대결이라는 성격을 넘어 전승된 한국 불교가 바로 되었는가 아니면 잘못되었는가 하는 본질적 문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지눌 스님에 대한 성철 스님의 비판으로 야기된 이 돈점논쟁에
논쟁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정치권의 세력 향배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외적으로는 서학 배후에 있던 서양 세력과의 대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의 '서학'이라고 하면 넓은 의미에서는 서양 문물에 관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의미하지만, 좁은 의
1. 송시열의 생애와 정치
1) 출생에서 호란의 치욕까지
송시열(1607~1689)은 조선 14대 왕인 선조 40년(1607년) 충북 옥천에서 송갑조와 곽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은진이고 자는 영보이며 호는 우암이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학문의 기초를 배우다가 8살 때 부친의 이종인 송이창의
1. 심설논쟁의 배경과 문제의식
주자학의 이론 구조에서 볼 때 心說논의가 갖는 중요성은, 주자학이 단순히 존재론적 논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심에 관한 논의가 현실의 윤리적 삶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심설의 정립과 함께 ‘거경궁리(居敬窮理) 거경과 궁리의 두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