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파의 맹아기라 할 수 있다.
18세기에는 17세기에 싹텄던 실학적 문제의식과 사상적 요소들이 정리되어 실학파의 학파적 성립을 보게 된다. 성호 이익을 중심(大宗)으로 하고 권철신 · 이가환 · 안정복 등이 주축이 되어 제도개혁론을 주장하는 18세기 전반의 성호학파와 청나라의 문화와 청에 들어
학파'로서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정약용이 나옴으로써 실학은 '시대사조'로서 대표적인 하나의 경향으로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1.1.2. 학파별 분류
이우성은 『실학연구서설』에서 아래와 같이 실학파를 3개의 유파로 나눈다.
① 제1기 경세치용파(18세기 전반)
성호 이익을 대종으로 하며,
성호 이익의 주장과 같은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한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성호학파에 기본 입장을 두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연암학파의 이용후생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중상적 이론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생산 기술 혁신론은 전적으로 도입해서 농구(農具), 직
한국실학연구』, 제11호 (한국실학학회, 2006)
어찌되었건 이러한 치밀한 고증과 객관적 서술은 후대에 인정받았고, 유교 역사학에 대해서 인색한 평가를 하는 일제시기 민족주의 역사가 단재 신채호 선생조차 ‘안정복의 역사 연구의 정밀함은 뛰어넘을 사람이 없으며, 지리의 잘못을 교정하고 사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