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특히 청동기시대부터 이미 인천은 한반도 서해안 지역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전의 인천의 지명은 알려져 있지 않고, 삼국시대부터 걸쳐 여러 번에 걸쳐 지명의 변천이 이루어졌다.
삼국시대에 있어 인천의 백제 때의 지명은 미추홀이고, 고구려 때의 지명은 매소홀이었다. 그리고
한국근대사 인식을 간단히 요약하면, 조선 후기에 성장하였던 자본주의의 맹아는 타율적인 개항과 일제의 침략에 의해 왜곡되었으며, 한국사회의 보다 진보적인 발전은 억압되었고, 일제시대에도 이러한 코스의 발전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의 연구는 식민사관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으
한국의 근대사를 통한 서양문화의 수용현상을 전통문화가 서양문화로 대체되는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서양의 충격과 압력에 마주하여 전통사회가 자기발견을 하여 자기형성을 해가는 과정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에서 해명될 필요를 갖는다.
(2) 시대배경
조선사회에서는 16세기 말 임진왜란으로 서양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영웅인 동시에, 시대를 이끌고 간 주체였다. 저자는 1990년대 중반 제기한 ꡔ일본의 대한제국강점ꡕ에서 고종의 반일외교운동을 강조하였던 것에 이어, 여기서 고종의 근대개혁 이념에 대한 재조명에 접근하게 된 것이었다.
2. 한국 근대정치사 왜곡 비판과 고종의 재평가
한국근대사와 사회변동』, 문학과 지성사, 1984, p.74.
함으로써 민족의식을 거세하려 하였다. 이런 시국에 맞추어 국내에서도 문맹 퇴치 운동과 농민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브나로드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식민지 시대의 민족정신을 일깨운 조선어학회의 한글 운동 등 개인과 사회, 민족의 발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