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판고라고도 하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 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록에 따르면 1481년(성종 12)에 고쳐짓기 시작하여 1488년(성종 19)에 완공했다고 한다. 깊은 산 속에 있어 전쟁의 피해를 입지
Ⅰ. 머리말
대장경이란 경經, 율律, 논論 등 삼장三藏의 불교경전을 총칭하는 말로,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에서는 그에 대한 조조雕造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대장경의 조조는 송나라 태조 개보開寶 4년(971)에 착수하여 태종 태평흥국 8년(983)에 완성시킨 개보판대장경開寶版大藏經을
2. 가람배치
(1) 해인사의 입지성
해인사의 가람배치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해인사의 입지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해인사의 입지성이 중요한 이유는, 창건 설화에 입지 과정이 매우 중요하게 설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인사의 주변 환경이 단순히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해인사가 입
1. 머리말
저자는 머리말에서 각 시대의 사회상(社會相) 역사연구에서 인구문제는 필수적인 연구대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문제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자료상의 제약과 연구방법의 한계 등으로 큰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저자는 이 논문을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기원에 대한 합의된 역사기원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여 아직도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가 처해있었던 역사적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까지도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서 우리는 고대조선이
1.1 불교에서의 대장경
경전은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 부처님의 설법을 정리해서 성문화할 필요를 절실히 느낀 제자들이 모여 편찬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성립한 경전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소승경장과 대승경장이 바로 그것으로, 이는 불교발달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처
〔고 대〕 이 지역은 낙동강에 임한 동부의 초계지역, 황강이 관류하는 합천지역, 남강 상류의 삼가지역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각 지역의 선사시대 유적은 합천댐 수몰지구 조사에서 밝혀진 대로, 일찍이 청동기시대부터 제각기 문화권을 형성하여 삼국시대 초기에는 이미 크고 작은 부족국가들이 이 지
大藏經)이라고도 부른다.
고려대장경의 경판 한 장 두께는 4cm, 8만 장을 전부 쌓으면 그 높이는 3200m 로 백두산(2744m)보다 높다. 경판 앞뒷면에 글자가 빼곡히 새겨 있는데 한 면의 글자는 대략 300자 정도, 전부 합하면 5천만 자가 된다. 뜻을 헤아리며 읽을 때 하루에 많아야 4∼5천 자 정도 읽을 수 있어
평가되고 있다.
이 문헌의 특징은 세조 연간에 간행된 훈민정음 문헌으로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 중 일부 운서(韻書)를 제외하고는 모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나온 불경 언해류인데 반하여 유일하게 불교와 관계가 없는 책이고, 또 의약서 언해 중 최초의 문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