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히트의 망명 후 생애
나찌가 집권하자 브레히트는 모든 작업의 토대를 잃었다. 제국의회 화재(1933. 2. 27)를 본 그는 그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곧장 간파했고 독일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프라하, 비인, 파리를 거쳐 나중에 스벤드보르크(덴마크)에 간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가족과 조수인
서양 형이상학은 인간이 눈앞에 세울〔표상할〕 수 있는 것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식의 시각에서는 <존재>의 의미도 <그 자리에 있음 현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자신의 눈앞에 세울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유할 수도, 경험할 수도, 그것에
를 만들고 책상을 만든다. 이때 나무는 자연이고 종이와 책상은 '제2의 자연'
이다. 그렇다면 제2의 자연으로서의 문화란, 결국 인간은 자신들의 삶의 편의
상 자연을 가공해서 인위적으로 바꾸어놓은 삶의 흔적에 불과하다. 이렇게
본다면 선천적 결핍존재로서의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더 잘
1. 피스카토르 (Piscator, Erwin 1893~1966)
정치극 또는 기록극의 창시자,
20세기 연극의 면모를 일신한 위대한 연출가
독일 연극과 영화 - 비루한 현실이 낳은 대범한 인물들, 피스카토르와 브레히트
1) 피스카토르의 인물소개
1893년에 태어난 피스카토르는 몇 군데의 작은 극장에서의 작업을 거친
자연주의 Naturalismus (1880-1900)
외국 문학의 영향으로 촉발
프랑스 에밀졸라 Emil Zola
→ 러시아 톨스토이 Tolstoi &
→ 스칸디나비아 스트린트베리 Strindberg, 입센 Ibsen
→ 독일
드라마 분야 독일 자연주의 : 유럽 자연주의의 절정
19세기 후반 <시적 사실주의> 계승
→ 사실주의 경향을 더 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