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송렴이 쓴 글들이라고 한다. 그는 유가 윤리를 존중하고 주원장의 은덕을 칭송하는 글을 많이 써 대각체(臺閣體)의 선구자(先驅者)라고 할 수 있겠다. 고계는 한대(漢代)에서 송대(宋代)에 이르는 모든 옛 시의 형식과 정신을 본받고 따르고자 하였다. 의고주의 경향의 싹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先驅者는 A. F. Bently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집단이론적 정치과정을 계승한 D. B. Turman은 「壓力團體」와 「利益集團」을 동의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어떤 한 집단이 공유된 태도에 의하여 형성된 형태의 共通的 要求나, 이익의 維持․促進을 위하여 사회에 있어서 다른 諸集團에 대하여 특정한 요구
살았던 조선의 학자로서, 흔히 실학의 선구자(先驅者)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3~4줄로서 짧게 요약될 수 있을 만큼 한백겸의 학문적 체계나 사상이 좁지만은 않다. 여기에서는 그의 생애와, 저서인 『구암집』·『동국지리지』를 통해, 그의 학문적 체계와 실학의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형 김현승은 1913년 4월 4일(음력 2월 28일) 전라북도 출신 부친 김창국(金昶國)과 모친 양응도(梁應道) 사이에서 6남매 중 2남으로 출생하였다. 출생지는 부친의 신학 유학지인 평양이다. 부친은 개신교 목사인데 평양에서 신학을 공부한 지식인이었다. 모친도 황해도 은율사람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