掛書事件)에 이어 토역경하정시(討逆慶賀庭試)에서 재차 나타난 변서사건(變書事件)에 연루, 대역죄로 처형되었다. 정치적으로 매우 불우한 일생을 보냈으나, 최근에 이르러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 ․정약용(丁若鏞) 등과 함께 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북학파의 선구적
-壬辰倭亂은 조선 건국이래 안정을 유지하던 당대인들에게 심적, 물적 피해를 주고
급격한 인구 감소, 국가 행정체계의 마비 등의 문제점 노정했음
이에 7년여에 걸쳐 전개된 壬辰倭亂 종결 이후 복구사업이 신속히 추진
: 주도한 계층은 兩班層
양반층이 주도하게 된 데에는 전후 국가의 대민지배정
Ⅰ.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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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지배층은 성리학(性理學)을 내세우고 유교정치의 기틀을 다지려고 하였다. 이들은 유교윤리와 배치되는 신앙과 종교는 모두 배제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성리학적 지배이념은 아직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보급되지 않았으며, 불교 ․ 도교 ․ 민간신앙 등은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