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방송교류의 현황
1. 개척기
방송교류에 대한 논의는 1957년에 북한전국기자대회준비위원회가 남한 언론인을 초청한 데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간헐적이지만 끊임없이 남한과 북한이 언론교류를 제의하였으나 성사된 적은 없었고 대부분 통일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선언적 의미에 그
Ⅰ. 남북교류협력과 문화 및 학술교류협력
문화가 민족통일과 사회통합의 토대로 작용하고 통일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 정치는 근대화의 자극을 받으면서 문화의 경계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 비슷한 문화를 가진 민족과 국가끼리 뭉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일시에 개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대북포용정책의 지속적 추진과 아울러 남북관계도 과거와 다른 축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민간분야의 교류&협력수요도 증가하는 추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회문화 교류&협력이
지난 서울에서 제1차 남북고위급 회담을 개최한 후 ꡐ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ꡑ를 교환함으로써 사실상 남북교류의 기본바탕이 제공되었다. 또한 2003년 8월 26일 남측 방송위원회와 북측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공동합의문을 발표함으로써 기본적인 방송교류의 원
남북교류협력과 남북기본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서명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남북기본합의서는 그 중요성에 비하여 너무나 홀대받아왔다. 특히 남한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갖는 법적인 구속력을 공공연히 훼손하는 해석이 지배했으며 남북기본합의서를 헌법과 현행 법률과의 관계
Ⅰ. 남북교류와 정보통신교류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목전에 두고 남북한 모두에게 정보기술의 발전은 매우 중요하며, 기술의 격차가 커질수록 앞으로의 통합문제가 확대되고 통합비용도 많이 들것이다. 이러한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 역시 매우 필
Ⅰ. 남북교류협력과 지방간 교류협력
남북한 교류협력의 다원화 양상은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민간단체가 교류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고 할 정도로 교류의 범위가 넓어져 가고 있다. 남북한의 교류협력이 궁극적으로는 통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주체가 다차원
Ⅰ. 남북교류와 문화예술교류
1. 음악
1985년 제1차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시 우리 대중가수들이 평양에서 공연한 바 있으며, 제3국 개최행사로서는 1991년 남측 중앙국립관현악단 52명과 북측 평양음악무용단 등 60명이 참가한 통일예술제(’92.8.17~18, 사할린)가 있다.
1990년의
Ⅰ. 서론
남북한 지방간의 교류협력의 가능성은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진단이다. 이는 주로 북한이 체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변화를 추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 가능한 것이다. 실제 최근 북한의 중앙과 지방간의 관계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북한은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군
남북방송교류의 논의와 전개
남북한 언론교류의 공식제의는 1957년 5월 15일 북한측이 “남북기자 및 언론인들의 교류와 각종 출판물들의 전송사진, 기록영화필름을 교환하자”는 제의와 선전공세를 취한데서 부터 시작된다. 이후 1960년대에 북한은 9차례에 걸쳐 언론교류를 남한정부측에 제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