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지에게 명하여 다시 팔도지지와 아울러 지도를 편찬하게 하였으나, 동왕재위시에는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다음 예종이 즉위함에 미쳐 다시 그로하여금 계속 편찬하게 하였으나 얼마 아니하여 왕이 돌아가고 성종이 즉위하였다. 양의 지리지(「팔도지지」)가 완전 탈고되어 진상한 것은 성종9년
양성지지만응 음성 지지반응 모로반사가 있다.
3) 자세 반사
비대칭성 긴장성 경반사(asymmetrical tonic neck reflex: ATNR)는 목의 고유수용체 감각자극에 의한 반사로 얼굴이 향하는 쪽의 신전, 머리(후두부)가 있는 쪽의 굴곡을 특징으로 한다.
ARNR은 펜싱 자세라고도 불리며 앙와위혹은 앉은 자세에서 쉽게 유
제12장 한시(漢詩)
동문선(東文選)
서론
『동문선』은 조선 성종 9년(1478년)에 서거정, 양성지 등 15명이 편찬한 조선 최초의 문집이다. 『동문선』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시문 4,240편을 수록하고 있으며, 13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문선』은 조선의 문학을 정리하고, 조선의 문학적
>을 어요첨과 양성지로 하여금 언문으로 만들어 바치게 하였으며 세종 10년에는 대간의 죄를 언문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이게 하였다. 세종 28년에는 상주사 김구를 불러들여 <사서>를 언문으로 번역하게 하였다. 결국 훈민정음을 위한 홍보수단으로서 도서를 가장 잘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성지(梁誠之) 등 23인의 찬집관이 참여하여 편찬한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이다. 《동문선》은 이 책 외에도 1518년(중종 13)에 신용개(申用漑), 김전(金詮), 남곤(南袞) 등이 편찬한 것과 1713년(숙종 39) 송상기(宋相琦) 등이 편찬한 것 등 모두 세 종류가 편찬되었다.
-가급적 문체를 망라하여 많은 작품
양성지(梁誠之) 등에게 명하여 1484년(성종 15)에 서거정(徐居正) 등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 1486년 홍문관교리로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1530년(중종 25) 중종의 명에 의해 이행(李荇)·윤은보(尹殷輔)·신공제(申公濟) 등이 펴낸 관찬지리서.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87년 제주 추쇄경차관(推刷敬差
양성지,권람,신숙주,강희맹,서거정,이극돈 등이다.
절의파는 세조의 왕위계승을 절대반대한 김시습 등의 생육신을 중심으로 한 파이다.
사림파는 경상도 밀양 출신인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일파이다. 사림파의 중심인물인 김종직은 동방성리학의 정통을 이어받은 대학자로서 그의 제자 중에는 김
1.2.1 규장각
세조 때에 양성지가 임금의 시문을 보관할 규장각을 두기를 청하였으나, 실시하지는 않았다. 이후 숙종 때에는 작은 전각을 마련하여 ‘규장각’이라 이름 하였으나, 직제는 갖추지 않았다.
정조가 즉위한 뒤 1776년(정조 1년) 음력 9월 25일에 창덕궁 금원의 북쪽에 규장각을 세우고,
양성지, 이양오, 이우준 등을 들 수 있다.
홍만종은 [명엽지계]에서 패설(稗說)을 지은 동기를 파한(破閑)에 두었다.
영·정조 이후 평민·중인 계층과 양반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 계층가지 독자층이 확대된 이유로는 ⅰ) 판소리의 보급, ⅱ) 이야기꾼(전기수)의 활약, ⅲ) 딱지본의 간행 등을 들 수 있
養性之道, 莫久行 久立 久坐 久臥, 久視, 久聽, 皆令損壽也.
양성지도 막구행 구립 구좌 구와 구시 구청 개령손수야.
양생하는 방법은 오랫동안 걷지도, 오래 서 있지도, 오래 앉지도, 오래 눕지도 말고, 오랫동안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수명을 단축시킨다ꡓ고 하였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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