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윤동주의 일생
시인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에서 부친 윤영석과 모친 김용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동주가 태어났던 명동촌은 교육, 종교, 독립운동이 다른 곳보다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조부 윤하형이 기독교 장로교에 입교하여 윤동주가 태어나던 해인 1917년 윤동주는 유아세례를
Ⅰ. 윤동주의 생애
윤동주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해방을 앞둔 1945년 2월 일본의 후쿠오카 감옥에서 안타깝게 순절한 저항 시인이다. 그가 옥사하고 3년뒤에 나온 유고시집(遺稿時集)은 그가 연희전문 졸업을 기년하기 위하여 뜻깊게 남긴 자필시고(自筆時稿) 3부 중에서 1부를 유일하게 보관하던 친구
Ⅰ. 윤동주의 사상
한국 현대문학사를 통해 볼 때 윤동주처럼 빛나는 시인은 드물다. 그는 민족주의 시인이자 기독교적 시인으로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시를 썼다. 우리나라 시의 흐름을 볼 때 민족의 식을 고취한 시인은 몇 있었지만, 민족주의와 함께 기독교 의식의 두 가지 관점을 갖고 시를 쓴 사
윤동주 시의 특징
윤동주는 그의 시에서 시작(詩作)날짜를 기록해 두고 있다. 그럼 윤동주는 왜 시작날짜를 밝혀 놓았을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시가 내면세계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윤동주는 일기를 쓰듯 시를 썼다. 따라서 그의 시는 자기성찰적 경향이 강하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Ⅰ. 개요
소년기에 윤동주는 내성적인 인상의 사람이었으나 의연함과 씩씩함을 지닌 젊은이였다.
그는 바람이 불어도 눈비가 내려도 끄떡없는 중심을 지니고 있었다. 몹시 단정하고 결백한 성품이었던 것이다. 모자를 비뚜로 쓰는 법도, 양복 단추를 기울어지게 다는 법도 없었다. 언제나 신발은
Ⅰ. 윤동주의 생애
윤동주, 그는 망명지에서 태어나 생의 거의 전부를 타향에서 전전한 사람이며 짧은 생애의 죽음마저도 적지 일본의 감옥에서 맞이하였으며 백골마저 망명지 간도에 묻혀 있는 시인이다. 1917년12월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본관 파평인 윤영석과 독립운동가이며 교육
Ⅰ. 개요
윤동주의 동시는 37편으로 총 111편의 1/3에 해당되어 양적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 아니라 그 문학적 가치도 결코 간과될 수 없다. 윤동주가 처음 문학을 접한 것은 명동 소학교 4학년 무렵이다. 이 때 서울에서 간행되던 아동 잡지 《어린이》,《아이 생활》을 구독하여 읽고
Ⅰ. 개요
한 줌의 재로 변한 윤동주의 유해가 돌아오는 날, 그의 혈육들은 용정에서 2백리 떨어진 두만강변의 한국땅인 상삼봉 역까지 마중을 갔다. 그곳에서부터 유해는 아버지에게서 동생 윤일주가 받아 모시고 긴긴 두만강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2월 말의 몹시 춥고 흐린 날이었다. 다들 묵묵히 각
1 윤동주의 생애
1917년 시인 윤동주(1917 ~ 1945)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당시 명동 학교 교사였던 윤영석과 김용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그를 매우 사랑하던 할아버지
2 윤동주의 시와 시정신
(1)동심과 그리움의 세계
윤동주의 시작품 총 111편 중 35편 정도가 동
............................. 지금까지 분석을 통해 우리는 윤동주의 ‘길’을 함께 걸어와 보았다. 길은 하나의 의지다. 의지는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동서남북으로 터진 길. 그러나 인생의 길이 어디 그리 수월한가. 때로 길은 카오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길은 생의 과정인 것이다. 갇힌 자유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