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과 장유가 마련했다.
이식과 장유는 외교활동이나 이념 수립의 과업의 과제에는 관여하지 않고 문학 그 자체를 한층 더 존중하며 산문도 시에 못지않은 예술품일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이룩된 작품은 현실의 문제의식을 되도록 배제하고 고답적인 취향을 구축하는 폐단을 지니면서도, 문학이 도
이식(李植)의 『택당집(澤堂集)』 허균(許筠)이 <수호전>을 모방하여 <홍길동전>을 썼다고 하는 기록을 남겨 국문학사 최초의 국문소설의 작자를 밝혀놓았다. 이식의 사후(死後) 송시열(宋時烈)이 교정(校正)·편찬(編纂)하여 그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
이식(李植)에게 보낸 편지에 《사미인곡》에 대하여 언급한 구절이 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87년(선조 20)에서 88년 사이에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작자는 이 가사에서 임금에 대한 간절한 충정을, 한 여인이 지아비를 사모하는 마음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뜻을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하였다. 제목
<고전강독클러스터> 어우야담 제3권 학예편 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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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죽은 친구 성진선(成晉善) 성진선(成晉善): 명종 때의 문인으로 생몰년은 1557년∼미상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즉행(則行), 호는 연강(烟江)이다.
은 매번 말했었다.
“내가 보건대 그대의 문장(文章)은 맹자(孟子) 맹자(孟子): 전국 시대의
문학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꾸며 놓은 이야기로 재미와 감동을 준다. 문학 작품 속에는 그 시대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또한 문학 작품은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문학 작품은 시대나 사회의 현실과 멀리 동떨어진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