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신서>>에서 다산이 정리한 기준을 따르면 이는 폭행에 의한 살인 즉, 화가 나서 힘을 사용하여 다만 다칠 것을 헤아리고 죽을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죽게 한 것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산 본인은 강귀동의 범행을 칼을 휘둘러 죽게 한만큼 고의성이 있었으며 술에 취했었던 것은 변명이 되
흠흠신서
1)흠흠신서 [欽欽新書]
형옥(刑獄)에 관한 법정서(法政書). 구분 법정서, 필사본 저자 정약용(丁若鏞) 시대 조선 후기 소장 규장각도서 필사본. 30권 10책. 정약용(丁若鏞) 저. 1822년(순조 22) 간행. 규장각도서. 형옥의 일은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일이지만, 이를 가볍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으므
조선 시대 과학 수사의 실제 사례(2)
황해도 토산에서 김천의란 자가 마을로 들어가는 큰 길에서 시체로 발견. 상황을 목격한 증인도 없었고 사인을 짐작할만한 상처도 없었음. 독살 여부도 살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음.
→ 배 위에 두 개의 밟힌 자국을 찾아냄. 『무원록』의 규정에 따라,
2. 정약용의 업적
1) 경세유표(經世遺表)
《경세유표(經世遺表)》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행정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 · 토지제도 · 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원리를 제시한 책이다. 44권 15책으로 되어있으며 필사본(필사연기 미상)이다. 원제명은《방례초본 邦禮草本》이며, 1817년(순
흠흠신서는 1822년에 필사본으로 나온 것으로서「경세유표」「목민심서」와 함께 '1표2서' 의 하나로 손꼽히는 고전적 형법서이다. 다산은 서문에서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흠흠신서는 재판의 정신과 과정, 형벌의 종류와 등급 등을 사례 중심으로 정리한 책이다. 동양 고전과 중국-한국의 역사적
1. 다산 정약용의 생애
유형원(柳馨遠)·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주자 성리학의 공리공담을 배격하고 봉건제도의 각종 폐해를 개혁하려는 진보적인 사회개혁안을 제시했다. 본관은 나주(羅州). 소자
흠흠신서(欽欽新書)≫를 함께 일컫는 것으로 책 제목의 끝 글자를 따서 부른 것이다. 경세유표는 조정에서 고쳐야 할 것을, 목민심서는 지방 관리의 자세와 실천 문제를, 흠흠신서는 죄수들을 다루는 일에 대한 글이다. 이 책들은 모두 조선 정치의 잘못을 지적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흠흠신서』,『아언각비』 <목민심서> 48권 : 현재 법도로 인민을 다스리고자 목민관을 깨우치고, 그 혜택이 백성들에게 돌아가도록 함. // <흠흠신서> 30권 : 인명에 관한 옥사를 다스리는 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모아 옥리들이 참고하게 함으로써 원한의 소지를 없애도록 함 (정약용이 형조
정약용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호는 다산이며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을 지냈으며 경학과 시문학에 뛰어나 자연과학에도 밝았다.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40세부터 18년 동안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목민심서와 경세 유포, 흠흠신서 등을 저술하였고 별세하기 전까지 방대
흠흠신서>,<경세유표>를 비롯한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다산은 18년간의 전남 당진에서의 유배생활에서 자기 관료 생활의 경험을 비추어 당시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사회체제의 전면적 개편을 구상하였다. 그는 당시 현실과 유리된 정통 주자학에 반하고 나아가 문제의 중심을 윤리, 도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