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근대 초기 「홍길동전」이 이와야 사자나미(嚴谷小波)의 「구렁이의 꿈(大蛇の夢)」으로 탈바꿈하면서, 고소설의 번역이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논하였다. 「구렁이의 꿈」은 1912년 이와야 사자나미의 『세계 오토기문고(世界お伽文庫)』 전집 27편에 실린 작품으로, 경판본 「홍길동전」이 미국인 알렌(H. N. Allen)에 의해 영역본으로 번역되고, 이것이 독일인 아르노우스(A. G. Arnous)에 의해 『조선의 설화와 전설(Koreanische Marchen und Legenden』로 독역된 것을 이와야 사자나미가 일역한 것이다. 이와야 사자나미는 이 작품을 조선의 오토기바나시(お伽噺)로 소개하면서도, 「홍길동전」특유의 분위기나 줄거리를 유지하기보다는 임의로 개작하여 작품의 메시지 및 홍길동의 인물형을 변화시켰다. 이는 이와야 사자...
남북 분단 이후 북에서 간행된 최명익의 『서산대사』와 리영규의 『평양성 사람들』은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수복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서산대사와 김응서라는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수복에 지대한 역할은 한 사람들은 평양8장사를 비롯한 평양 인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양 인민은 영웅적인물로 형상화되어 예찬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못지않게 평양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도 두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이다. 이는 평양중심주의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허구 인물의 창조도 두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점 가운데 하나이다. 예술적 허구는 형상 창조의 중요한 수단이며 형상의 전형성을 담보하는 필수적 조건이라는 문예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허구 인물의 전형성은 『평양성 사람들』에 와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두 작품 모두 허구의 여성...
이 글은 해방기 이북 소설에 인물로 등장하는 김일성 형상을 탐색하기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김일성이 (‘북한소설’로 이어지는) 이북소설에서 인물로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한설야, 「혈로」) 이전에 발표된 남북의 대중매체에서 김일성의 모습을 검토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해방기 이북 신문에서 김일성이 소개된 최초의 기사와 이와 같은 날 이남의 신문에 소개된 다른 귀국 항일투사의 기사 및 이남에서 처음 소개된 김일성 기사를 비교해 보고, 서울에서 발행된 좌익 일간신문 『조선인민보』에 실린 8회에 걸친 연재 기사 「지도자군상」의 일부인 김일성 기사를 다른 7인에 대한 기사들과 비교했다. 이를 통해 당시 이상적인 지도자상으로 인식되었던 요소들이 기사에서의 김일성 형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소련군의 언론통제하에서...
이 글은 해방기 이북 소설에 인물로 등장하는 김일성 형상을 탐색하기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김일성이 (‘북한소설’로 이어지는) 이북소설에서 인물로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한설야, 「혈로」) 이전에 발표된 남북의 대중매체에서 김일성의 모습을 검토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해방기 이북 신문에서 김일성이 소개된 최초의 기사와 이와 같은 날 이남의 신문에 소개된 다른 귀국 항일투사의 기사 및 이남에서 처음 소개된 김일성 기사를 비교해 보고, 서울에서 발행된 좌익 일간신문 『조선인민보』에 실린 8회에 걸친 연재 기사 「지도자군상」의 일부인 김일성 기사를 다른 7인에 대한 기사들과 비교했다. 이를 통해 당시 이상적인 지도자상으로 인식되었던 요소들이 기사에서의 김일성 형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소련군의 언론통제하에서...
이 글은 해방기 이북 소설에 인물로 등장하는 김일성 형상을 탐색하기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김일성이 (‘북한소설’로 이어지는) 이북소설에서 인물로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한설야, 「혈로」) 이전에 발표된 남북의 대중매체에서 김일성의 모습을 검토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해방기 이북 신문에서 김일성이 소개된 최초의 기사와 이와 같은 날 이남의 신문에 소개된 다른 귀국 항일투사의 기사 및 이남에서 처음 소개된 김일성 기사를 비교해 보고, 서울에서 발행된 좌익 일간신문 『조선인민보』에 실린 8회에 걸친 연재 기사 「지도자군상」의 일부인 김일성 기사를 다른 7인에 대한 기사들과 비교했다. 이를 통해 당시 이상적인 지도자상으로 인식되었던 요소들이 기사에서의 김일성 형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소련군의 언론통제하에서...
이 글은 해방기 이북 소설에 인물로 등장하는 김일성 형상을 탐색하기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김일성이 (‘북한소설’로 이어지는) 이북소설에서 인물로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한설야, 「혈로」) 이전에 발표된 남북의 대중매체에서 김일성의 모습을 검토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해방기 이북 신문에서 김일성이 소개된 최초의 기사와 이와 같은 날 이남의 신문에 소개된 다른 귀국 항일투사의 기사 및 이남에서 처음 소개된 김일성 기사를 비교해 보고, 서울에서 발행된 좌익 일간신문 『조선인민보』에 실린 8회에 걸친 연재 기사 「지도자군상」의 일부인 김일성 기사를 다른 7인에 대한 기사들과 비교했다. 이를 통해 당시 이상적인 지도자상으로 인식되었던 요소들이 기사에서의 김일성 형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소련군의 언론통제하에서...
이 글은 해방기 이북 소설에 인물로 등장하는 김일성 형상을 탐색하기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김일성이 (‘북한소설’로 이어지는) 이북소설에서 인물로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한설야, 「혈로」) 이전에 발표된 남북의 대중매체에서 김일성의 모습을 검토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해방기 이북 신문에서 김일성이 소개된 최초의 기사와 이와 같은 날 이남의 신문에 소개된 다른 귀국 항일투사의 기사 및 이남에서 처음 소개된 김일성 기사를 비교해 보고, 서울에서 발행된 좌익 일간신문 『조선인민보』에 실린 8회에 걸친 연재 기사 「지도자군상」의 일부인 김일성 기사를 다른 7인에 대한 기사들과 비교했다. 이를 통해 당시 이상적인 지도자상으로 인식되었던 요소들이 기사에서의 김일성 형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소련군의 언론통제하에서...
본 논문은 현행 학문분류로서 필자의 연구영역으로 상정되어있는 ‘한문학’에서 이루어진 젠더적 관점의 연구를 검토하고, 시각의 확장을 위해 ‘남성성’ 고찰에 대한 시론을 제기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한자’와 ‘한문’의 지배력이 공고했던 시기에 산생된 한문학의 유산들은 당시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떠했는가 하는 실제를 보여주기는 어렵지만, 한문으로 글을 쓰고 그것을 후세에 전할만한 토대를 가진 세력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고 그 관계를 어떻게 이상적으로 조정하고자 하였는가 하는 인식의 문제를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는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한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 한문학에서 ‘여성젠더’를 고려한 연구는 젠더화된 어문생활 환경에서 창작되고 전승된 소수 여성작가의 작품들을 그러모으고, 작가론을 구상하며, 남성의 시...
이 논문은 인지 시학의 이론을 구체적인 설화에 적용해 보고, 인지 과정의 원리를 통해 읽기의 과정을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은혜 갚은 까치」 설화를 대상으로 설화에 담긴 개념적 은유의 양상을 확인하고, 이후 설화의 교훈과 가치의 대상을 인식하는 보편적인 인지 모형(cognitive model)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였다.
개념적 은유는 인지 시학에서 다루는 논의 가운에 전제가 되는 핵심 개념으로서 주체가 세계를 인식하는 사고 현상으로 정의한다. 전승자의 사고와 표현이 담긴 구술 언어의 특성상 설화텍스트는 일상 경험에 대한 사유 방식이 담겨 있다. 논의 과정에서 인지시학의 방법론적 틀이 되는 개념적 은유, 은유의 양상, 혼성공간의 적용 원리를 기술하고 이야기의 의미를 구성해 내는 의미 전략의 원리를 논의하였다.
이 ...
이 글은 20세기 초 라디오에서 방송되었던 전통 가곡의 연행 및 향유 양상을 살펴보고 그 문화사적 의미를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라디오방송은 다양한 전통 예술들의 대중적 지평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가곡은 본래 소수 애호가들에 의해 향유되던 상층의 풍류 음악으로 대중적 차원에서는 활발히 전승되지 못했다. 하지만 라디오방송으로 인해 단절되어 가던 전통 가곡 문화를 새롭게 계승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라디오방송 초창기에는 한두 악곡의 작품들이 전파를 탔고 그 방송 횟수도 적었지만, 1930년대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대여섯 악곡 작품들이 레퍼토리를 이루어 가곡 편가(한바탕)의 방식으로 방송되었다. 이후 방송 횟수도 점차 늘어나며 1936년에는 한 해 동안 50회에 걸쳐 방송되기도 하였다. 가곡창 라디오방송은 여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