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시대의 윤리학 -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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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헬레니즘 시대의 윤리학: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한 때(기원전 323년)부터 중세 기독교시대의 시작까지의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로마 철학의 시대를 헬레니즘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중요한 두 윤리설, 즉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윤리설은 이 시기의 사상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전문적인 철학자들의 학파를 훨씬 넘어서서 일반 대중들에게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쾌락주의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사람들의 삶의 본질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알렉산더 이전에는 그리스 전역에서 폴리스 또는 도시 국가가 정치적 조직의 기본 모델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더 이후에는 도시 국가들이 권위를 잃게 되었고 군주의 권력이 그러한 권위를 집중적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극적인 정치적 변화는 그리스인들의 개인적인 삶의 양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알렉산더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인간의 삶과 성공, 행복 등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도시 국가라는 정치적 질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더 이후에 도시국가는 정치적 권위를 상실하였으며 그 결과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의 근원을 상실하게 된 그리스인들은 소외감, 소속감의 상실, 삶의 무의미함 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더욱이 알렉산더가 죽은 후 이어진 정치적인 혼란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계속되는 정복전쟁과 가난, 죽음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험난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의 쾌락을 극대화하라. 가능한 한 강한 쾌락을 추구하라. 그리고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겨라.” 라는 충고들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행복을 쾌락의 획득 및 고통의 회피와 동일시하는 것이 쾌락주의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쾌락주의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얻게 되었고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중요한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는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그 후 500년 동안 굳건히 유지되었다.
아리스티포스와 키레네 학파
헬레니즘 시대 이전에도 쾌락주의적인 생각을 가졌던 철학자들은 존재하였다. 이들을 키레네 학파(Cyrenaics)라고 부르는데 그 중심인물은 아리스티포스(Aristippus)였다. 그는 쾌락이 우리의 삶의 자연스러운 목표라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자주 종교나 철학의 영향 때문에 잘못 생각하여 쾌락이 유일하고 진정한 목표라는 사실을 위선적으로 부정하기도 하지만 사실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항상 쾌락을 추구한다. 사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이성적인 사람은 이 사실을 받아들여 보다 강렬한 쾌락을 얻기 위해 심사숙고하며 모든 주의를 집중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리스티포스는 그 질문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미래에 생겨날지도 모르는 가능한 고통 때문에 현재의 확실한 쾌락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물론 이성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성의 중요성은 우리의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쾌락의 수를 늘일 수 있다는 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티포스는 우리가 쾌락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최선의 것은 금욕과 절제가 아니라 바로 쾌락에 의해서 꺾이지 않도록 쾌락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급은 자기 절제를 찬미한 것으로 보일 지도 모르지만 이 말이 진정으로 의미한 바는 만일 우리가 쾌락에 의해서 꺾이게 된다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쾌락의 총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쾌락주의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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