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생명윤리와 철학 기사를 통한 분석 및 비판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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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생명윤리와 철학 기사를 통한 분석 및 비판적 사고
낭만적인 사랑을 원하세요? 상품이 된 연애
연애가 예전처럼 특별한 경험이며 지극히 사적인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딱히 전문 지식이 없더라도 친구들에게 연애에 관한 조언 및 상담을 항상 해주고는 했지만 그 연애상담이 이제는 직업화되어 ‘연애코치, 연애 칼럼니스트, 연애 컨설턴트’ 등의 직업으로 등록 되었다. 보편성을 기반으로 한 매뉴얼이, 통계와 데이터로 무장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졌다.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했던 연애의 기술은 학습의 대상이 되었고 술 한 잔에 털어 넘기던 연애의 아픔은 치료해야할 증상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연애를 더 이상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게 만들었을까?
우선, 이는 개인중심 사회에서 관계 맺기에 서툴러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낭만적인 사랑, 연애는 분명 가까운 시점까지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남성들은 공적인, 합리적인 영역만을 자신의 영역으로 치부해 왔으며 감정의 문제는 여성들의 소관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그런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 남성들에게도 더 이상 무뚝뚝함만이 아닌 친밀성을 맺는 역할이 주어졌으며, 보살핌, 소통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연애를 단지 ‘연애’로만 볼 수는 없다. 연애상담은 낭만적인 사랑을 이룩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이는 결국 자기계발의 일례이다. 왜냐하면 연애는 경력이며 성공적인 결혼의 전제가 되기 때에 인생의 성공 및 자아실현의 발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노동자가 자기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듯이 연애나 결혼 또한 개인의 능력의 한 부분인 것이다.
또한 연애의 매뉴얼화가 연애의 양극화를 감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연애가 언뜻 보기에는 대중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연애의 기회와 조건은 불평등하며 양극화되어 있다. 재산이나 조건 정도에 따라서 남녀간의 호감도는 달라지며 이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성적 소수자는 대머리 아저씨, 나이 든 아줌마, 가난한 남자, 뚱뚱한 여자이다. 연령, 계급, 자산, 비만, 머리숱, 키까지 인간의 매력은 자본화 되었으며 매력의 매뉴얼화획일화는 실연의 주요 원인이 되기까지 한다.
이런 일이 비단 나이가 들어서만 있는 게 아니다. 비록 20대 초반이지만, 미팅을 할 때 학교와 학과, 나이를 알아보고 만나며, 만나면 서로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고 대회를 한다. 소개팅은 더 하다. 상대를 소개받는다고 결정하기 전 생김새, 키, 학교, 학과, 사는 곳, 나이, 성격 모든 부분을 듣고 소개를 받을 지 말지를 결정하며, 만나면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둘러 싼 모든 것을 보고난 후 교제를 할지 말지를 정한다. 모두가 이러지는 않겠지만 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름만 알고 사람을 만나던 때는 이미 지났으며, 점차 흘러온 사회 분위기가 이러하며 남들은 다 따지고 사는 데 자신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살 수는 없기 때문. 대안이라고 해봤자 나부터 실천하기 혹은 조건을 따지지 않을 진정한 사랑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같은 사랑은 누구나 생각만 할 뿐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 한 게 현실이다. 한 번 개척된 분야는 발전해나가기 마련이며 진보는 있을지라도 더 이상의 퇴보는 없다. 누구든 지금 현실은 불합리하며, 잘못 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차마 말하거나 고치거나 옛날로 되돌리지 못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맞춰나가지 않으면 욕만 먹고 당장 지지를 받더라도 현실적인 타개책은 되지 않기에, 이 낭만이 없어진 연애 및 연애의 상품화는 당분간은 계속 될 것이다.
대형종합병원의 경쟁?
서울대병원이 최근 경영위기로 의사들에게 주던 선택 진료수당 깎는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들에게 환자 검사를 늘릴 것을 지시하고 진료 재료를 값싼 것으로 교체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에 질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사정은 서울대 병원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대학 병원들의 끝 모르던 투자 경쟁도 예전 같지 않다. 장기화된 경기 불황과 환자 감소로 대학 병원들이 핵심 사업을 보류했다. 많은 병원들이 사상 최악의 적자를 경험하며 진행 중 혹은 진행하려던 사업들이 중단되고 보류되고 있다.
이렇듯 대학병원 및 중소병원은 경기불황을 겪고 있는데 반해 빅5병원의 병상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는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해 새로운 환자가 늘어난 게 아니라, 큰 병원끼리 제한된 하나의 시장에서 밥그릇 싸움을 하다 생긴 결과이다. 큰 병원의 경영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런 경쟁 때문이다. 단기간에 병상 수를 늘리고 그 만큼 환자도 많이 유치하지만 몸집을 키운 만큼 충당이 안되는 게 현실이다. 경쟁이 더해질수록 의료의 질이 향상되기는커녕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 된다. 값싼 의료용품의 사용, 실적에만 급급한 의료 환자는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빅5병원은 경기불황을 겪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럴만한 자본이 있고 명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이제 ‘효율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수가를 올리고,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수익을 내는 의료를 중점으로 할 것이다. 의료행위는 분명 이윤을 따지는 게 아니라 윤리적으로 해야 하는데 점차 상업화 되어간다. 더 많은 투자와 양적 확대를 통한 경쟁은 의료의 발전, 환자의 편의가 아닌 사회적 비효율이다.
90년대에 병원에 기업이 끼어들었다. 기업은 탄탄한 자본에 근거하여 병원을 키워왔고 그래서 지금과 같이 빅5병원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 자본이 너무 과해서 탈이 나버렸다. 병원이 시장이 되어 버렸으며, 의료가 하나의 상품이 되었고, 소위 있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의료. 분명 문제가 있다. 보건의료의 탈시장, 탈상품, 공공화가 차근차근 도달해야할 과제다. 물론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전까지 해온 불필요한 경쟁을 줄여 나가고, 의료를 사업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의료를 의료로 보아야 한다. 대형 종합병원의 경영 위기가 지금까지의 경쟁이 불필요한 것이었다는 것, 지금까지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전환점이기를 바란다.
의료계 무한 포식자, 5마리 황소 개구리
병원들이 앞다퉈 몸집 부풀리기에 나서고 있다. 모두 빅5병원으로 도약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는 일부에서 ‘의료계 군비경쟁’이라고도 부른다. ‘의료계 군비경쟁’이란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 현상을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1960년대 미국 병원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 미국 병원들은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려고 첨단장비 및 고가의 시설을 갖추었는데 환자들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기에 번지르르한 병원을 찾게 되며, 병원에서는 투자한 만큼 이익을 보기 위해 진료비를 올린 게 바로 그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보살피는 의료분야가 어쩌다 이런 전쟁터가 됐을까?
이는 현대와 삼성이 의료시장에 뛰어든 것부터 시작한다.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과 대등해졌으며 암센터, 심장병센터 등을 지으며 규모경쟁을 했으며 병상 수를 확장했다. 세브란스와 서울대병원도 이에 질세라 암센터, 심장뇌혈관센터를 짓고 있으며 병상 수를 확장했다. 우리나라 병상은 필요한 만큼을 넘어섰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포화상태를 넘어 과포화 상태로 갈 게 확실하다. 병상이 많아진다면 소비-공급 곡선으로 따질 때 소비자에게는 더 좋을 것 같지만 의료시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보건경제 분야는 의사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공급이 결정되고, 가격경쟁은 상대적으로 결여된다. 어느 대형 병원도 저가 마케팅은 하지 않으며 늘어난 병상에 비례하여 필요 이상의 의료서비스가 늘어났고 소비자들은 필요 이상의 돈을 낼 여지도 커졌다.
고가의 장비를 통하여 비싼 수술을 병원은 생존의 방법으로 여기며 대표적으로는 로봇 수술이 있다. 로봇 수술 덕에 시술 한 건이 1천 만 원을 훌쩍 넘기기도 하며 병원에서는 환자를 로봇 수술로 유인한다. 환자들은 의사의 말 밖에는 믿을 게 없기 때문에 로봇수술을 택한다. 이만 보면 결론이 난다. 의사의 도덕적 해이, 의사의 잘못. 하지만 의사들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옛날에는 사람을 잘 고치는 의사가 훌륭한 의사였지만 이제는 돈 잘 버는 의사가 훌륭한 의사다. 과거에 수익은 병원장이나 신경쓰는 거였지만 이제는 모든 교수가 매출과 실적에 쫓기며, 실적에 따라 승진이나 평가도 달라진다. 매출에 따라 인센티브도 달라지고 인센티브가 없는 대학은 거의 없다. 의학과 과학의 잘못된 만남이소비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게 했으며, 의료의 상업화는 의사들을 매출에 쫓기는 영업맨으로 내몰았다.
병원이 지어지면 입원실은 차기 마련이며, 진찰실을 찾아온 환자를 입원시킬지 말지는 의사의 결정에 달려있다. 이에 따라 의료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다. 대형병원과 동네 의원의 입원 일수를 비교하면 둘 다 증가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대형병원의 증가 비율이 훨씬 높으며, 문을 닫는 것도, 외래 환자의 내원 일수도, 대형병원을 동네병원은 뛰어넘을 수 없다.
이미 만행해있는 대형병원의 의료시장 포식을 단번에 규제하기는 힘들지만 의료계의 균형을 위하여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정 권역 내에 지을 수 있는 병상의 총량을 규제하는 ‘병상 총량제’를 도입해야 하며, 환자들이 병원의 규모와 명성만 보고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각 병원의 같은 진료별 의료비용 및 수술 성공률 등을 법적으로 공개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입원 환자 수를 늘리는 것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잘못된 병원 내의 관행도 바로잡아야하고, 병원장과 의사들의 양심교육을 통해 사람을 잘 고치는 훌륭한 의사를 지향하던 때로 돌아가기 위해 국가와 병원 그리고 개인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