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생명윤리와 철학 기사를 통한 분석 및 비판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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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생명윤리와 철학 기사를 통한 분석 및 비판적 사고
“세번째 결혼인데도 남의 눈치 안봐요.”
덴마크는 올해 행복지수 1위의 나라라는 영광을 얻었다. 덴마크에서 12년간 살고 있는 미국인 샤미는 덴마크 인들이 왜 행복한지에 대한 조사를 3년째 진행 중이다. 해가 짧아서 어둡고 추운 나라의 행복지수가 세계 1위라는 건 뜻밖의 결과이다. 그녀에 따르면 덴마크의 행복은 그들의 발달된 사회 복지제도와 오랜 관습으로 그들의 내면에 굳혀진 평등 지향적 특성에서 유인한다. 덕분에 부자들은 평등사회 실현을 자랑으로 여기고 소득의 50% 가량을 세금으로 내는데 전혀 불만이 없으며 아무리 이혼률이 높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행복 지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가장 먼저 짚고 싶은 부분은 국가행복지수라는 평가의 특성이다. 행복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 한 것이고 평가항목을 조금만 바꾸어도 나라별 격차가 크게 난다. 만약 발전과 경제력에 좀 더 초점을 두고 평가한다면 샤미가 그리도 염증을 느꼈던 미국이 행복지수에서 1위를 할 것이고 평등과 배분에 초점을 두었다면 복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 할 것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가치를 두는 기준들도 항상 변화해 왔다. 만약 평등과 분배가 잘 이뤄지는 복지국가에서 이후에 상류층들의 역차별에 대한 불만, 경제적 발전의 더딤 등의 문제점들이 발생한다면 가치들의 우선순위도 또 다시 바뀔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행복지수를 평가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애매모호 한 것이다.
또한 그들의 민족적 특성을 가지고 그들이 우리보다 행복하다는 이유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민족적 특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가장 적절하게 발전된 것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이유가 있다. 어느 나라의 민족적 특성이 어느 나라 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덴마크 사회는 가족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좀 더 중요시 하므로 이혼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불행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전통적으로 대가족의 형태를 이뤄왔고 그 어느 나라보다 가족의 가치를 중요시 하는 나라는 가족의 형태를 깨버리는 이혼이 개개인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은 웃기지 않은가.
이런 나라별 행복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국민들의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에게 나름의 영광을 주어 그 좋은 체제를 유지하게 하고 낮은 순위의 나라들에겐 자신들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변화시키는데 자극제가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것이 좋은 효과만을 가지고 온다고 보진 않는다. 높은 순위를 차지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에는 정말 그 사회의 구조나 부조리 때문에 불행한 사람도 많을 텐데 그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전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낮은 순위를 차지한 나라의 사람들은 그들이 불행하다는 것을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갑자기 알게 되고, 그 순간부터 그들은 진짜 불행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정부가 문제점들을 고치려 노력하고 높은 순위 나라들의 정책들을 벤치마킹 한다고 해도 이미 자신들의 위치를 인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이미 몇몇 나라에선 이러한 행복지수를 매기는 기관을 매수해서 자신들의 순위를 높이는데 돈을 쓰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샤미의 덴마크 남편이 마지막에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덴마크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렇게 행복한지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올해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영예를 얻은 나라의 국민들은 실제로 자신들의 행복을 그리 실감하지 못한다, 과연 이 행복지수라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우울증에 빠진 서울.. 미혼 여성 더 심해
우울증 자가 프로그램에서 우울증 자가 테스트를 실시한 서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그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연령대에서는 20대가 가장 높은 우울정도를 보였고 미혼여성이 미혼남성이나 기혼 여성보다 높은 우울정도를 보였다고 한다.
기사에서 말하는 우울증은 중증의 우울증이 아니라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경험하는 경증 우울증이다. 기사에 따르면 경증 우울증은 우울증에 해당하는 주요 증상인 우울한 기분이나 의욕저하는 있지만, 지속기간이 2주보다 짧을 때를 말하며 마치 스위치를 켰다 끄는 것처럼 일정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우울해지거나 어떤 사건이 분명한 계기가 되면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정도의 감정기복은 누구나 살면서 경험하는 것 아닌가? 우리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정보나 기계들이 없던 과거에도 사람들은 위에서 말하는 경증의 우울함을 갖고 살았고, 앞으로 아무리 행복한 미래가 구현된다고 해도 사람들은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우울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중의 하나인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가 우울증이란 병에 너무 민감해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를 이용하려는 이익집단이 뒤에 있진 않을까? 의문점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정신질환과 관련된 질병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이와 관련한 사업들과 의료분야가 함께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정신병원들과 전문의들이 생겨났고 정신건강을 내세워 광고하는 운동, 각종 테라피 요법, 휴식시설들이 즐비하다. 실제로 피폐한 정신을 치료 한다는 의미로 ‘힐링’이란 단어까지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상황이다. 사실 사람들은 잠깐의 우울이나 스트레스를 이겨낼 힘 정도는 내면에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병으로 진단하는 순간 통제할 힘을 잃고 절망에 빠진다. 자신이 그 상황을 이겨낼 힘이 없다고 미리 판단 내려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신문기사나 방송, 인터넷에서 모두 우울증의 심각성이나 문제에 대해서 과장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상황에선 사람들에게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익집단은 사람들의 이런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겪는 감정기복을 질병의 범주 안에 넣어서 순식간에 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 오늘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저 우울증 조사를 한 단체도 어떤 기준과 질문지로 우울의 정도를 평가하는지 기사엔 잘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 설문기준이 그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사에 따르면 미혼 여성이 다른 집단보다 높은 우울정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혼 여성 집단은 다른 집단보다 정신건강 치료 기관이나 시설들에 접촉이 실제로 잦고 거부감이 적은 집단이란 걸 알 수 있다. 남성들은 취업이나 사회적 분위기상 그런 곳에 가는 것을 꺼리고 기혼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업에 치이고 여유가 없어서 정신 건강에 신경을 쏟을 여유가 없기 마련이다. 이런 조사를 통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미혼 여성들에게 괜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그들이 정신건강을 위해 돈을 투자하게 만드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익집단의 잠재적 고객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글을 쓰는 나도(실제로 스스로가 우울함을 느끼는 빈도가 낮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속하는 집단이 우울정도가 높다는 기사 제목만을 보고 바로 괜한 불안감에 이 기사를 선택해서 읽어 봤으니 그 효과는 어느 정도 증명이 된 샘이다.
학교 밖으로 사라진 아이들 28만명
학령기 아이들 713만 명 중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고 밖을 떠돌고 있는 학령기 아이들이 28만 명에 육박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국가 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 학령기 인구의 4%가 학교 밖을 맴돌고 있지만,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가는 전혀 파악도 관리도 하고 있지 않단 얘기다. 이번 분석을 지원한 김세연 의원은 "학교 밖을 맴도는 28만 명을 방치하면 그 아이들 개개인의 미래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면서 "그들이 배울 때를 놓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라고 말한다.
물론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리하고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그에대한 방안도 마련되어야 할 부분이 맞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왜 이 28만 명에 육박하는 아이들이 그들이 말하는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구지 벗어나려고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질문이 우선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28만 명의 아이들이 배울 때를 놓치지 않도록 다시 학교로 아이들을 돌려보낸다고 해도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또 밖으로 나가려 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들과 같은 사라진 아이들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즉,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건 그들이 배울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배울 때를 놓치는 걸 감수하고서도 학교란 사회를 포기한 원인이다.
기사에 따르면 최근 들어서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중산층의 아이들 사이에서도 학교를 벗어나는 비율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과거 학비 마련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사회로 일찍 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생활고가 학교를 그만두는 이유만은 아니란 것을 반증한다. 아이들을 내모는 학교의 다른 모습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는 심각한 서열화 사회이다. 힘의 관계가 존재하고 그 속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왕따’, ‘셔틀’ 등의 딱지를 달고 내쳐진다. 그 힘은 물리적인 힘, 성적, 돈, 외모, 교사라는 권력체 등 냉혹한 현실 사회와 마찬가지의 것들이다.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만 믿고 그 안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실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12년이라는 힘겨운 공부를 통해 얻는 것이라곤 똑같은 틀 안에 그들의 사고를 구겨 넣어서 우리 사회에 적합한(현 체제에 굴복하고 반항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학교를 벗어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성공의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도 생각 할 수 있다,
이번 조사를 실시한 김세연 의원에 따르면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이 28만 명의 아이들은 사회 부적격자이자 앞으로의 큰 사회적 문제이다. 이 기사 하나로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는 앞으로 사회에 짐이 될 존재’ 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생길 것이고 그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