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hwp1.근대의 옷을 입은 신 여성의 출현
1)근대와 여성의 만남 (p.17)
식민지 시기 신여성에 대한 연구는 최근에 상대적으로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는 연구 영역 중 하나이다. 1990년대 이후 이른바 거대 담론의 붕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 연구자층의 증가와 연구 영역의 다양화, 대학에서 여학생 비율의 증가, 여성 문제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의 증대 등을 배경으로 신여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여성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은 1950년대 이후에 도입되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국의 학계를 풍미한 근대화 이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식민지배의 초기인 1910년대에는 이전 시기에 있었던 근대에 대한 동경과 선망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일본 유학생 등을 통해 일본에서 근대를 도입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1920년대가 되면서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각성과 계몽을 배경으로 서구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된 근대의 모습이 적어도 도시를 중심으로 한 일상의 영역에서 한층 가시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1930년대가 되면서 상황을 복잡해졌다. 일본과 서구의 근대가 식민지에서 경합을 벌이면서 식민지의 내재적 전통과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조선의 식민지적 근대를 형성하는 시기였다. 그 결과, 이 시기에 전통은 일제의 식민 지배와 서구의 영향이라는 두 측면과 상호작용하면서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역동성을 보였다. 1930년대의 이러한 경향은 일부 식민지들의 영합과 지지를 바탕으로 더욱 강화되면서 1940년대의 전시 동원체제로 이행되었다.
2) 일본의 ‘모던 걸’ 과 조선의 ‘신여성’ (p.22)
식민지 신여성의 문제는 식민 모국에서의 논의를 아울러 고려한, 이른바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파악해야 적절하다. 그러므로 우선, 식민지 조선과 일본에서 쓰던 ‘신여성’ 과 ‘모던 걸’ 이라는 말의 연원과 그 차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은 흔히 일본의 ‘새로운 여자들’에 비유된다. 1920년대 조선의 신여성 대부분이 일본 유학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신여성 운동이 1920년대 조선의 신여성 운동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두 나라에서 신여성의 출현은 유사성에 못지 않게 서로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신여성이 사회적 쟁점이 되었던 시기는 1910년대였고, 식민지 조선에서 신여성이 출현한 것은 이보다 늦은 1920년대였다. 또한 일본에서는 ‘새로운 여자들’이라는 용어가 특정한 시기에 활동한 여성들을 지칭하는 역사적 개념이었던 것과는 달리,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이라는 말은 식민지 시기 전반에 걸쳐 사용되다가 일반 개념의 지위를 획득한 것도 달랐다.
‘모던 걸’은 신여성의 영어식 표현이지만 양자의 의미에는 차이가 있었으며, 일본과 식민지에서 갖는 의미 역시 각각 달랐다. ‘모던 걸’ 은 신여성이나 ‘자각한 여성’과는 달리, 부인
참정권이나 여권 확장론과 같은 이론도, 페미니즘의 이상도 갖지 않았다. 모던 걸은 19세기 초에 일어난 개인 해방의 사상적 영향과 함께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 활동 시간의 증가를 배경으로 태동했다고 보았다.
3) 여성에 관한 관찰은 편견과 혹평으로 충만한 바 (p.31)
신여성에 관한 역사적 연구에서는 자료의 문제와 자료 해석에 개입되는 가치의 문제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여성에 관한 자료와 연구들에는 남성의 편향된 관심이나 가치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권력작용과 그것이 초래한 사회적 결과는 1920년대 초에 이미 지적한 바가 있다.
편견은 특히 1920년대 이후에 등장한 신여성에게 집중되었다. 전통적인 여성과는 달리 신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가치고 남성 중심의 질서와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도전하였다. 도전이 근본적이고 위협적일수록 남성 지배 사회의 반발은 커졌다.
